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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이야기

 
   담배 이야기를 했으니 술 이야기도 하나 해야겠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내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 같은 것이 거의 없는 편이다. 어머니 보다 한 살 아래셨던 아버지 나이가 마흔 하나 되던 해 나를 낳으셨다니 위로 딸 둘을 낳고 아들 낳기를 무척 기다리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되던 해 돌아가셨으니 추억다운 추억을 남길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 때가 한국전쟁이 막 끝난 곤궁하고 피폐한 시기였으므로 시간이 있더라도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거리를 만들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터여서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유독 내 머리 속에 똑똑히 각인된 한가지가 아버지의 술버릇이다.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으나 아버지는 일단 술을 드시면 대취가 될 때까지 마셨다. 집에서 술을 드신 일이 거의 없었으니 아마 친구 분들이나 시골 기관장들과 어울렸겠지만, 그런 날은 예외 없이 의식이 없을 정도로 만취가 되어 돌아오셨다. 아버지의 술 뒤끝은 당시 우리집으로 사용하던 관사 뒤 마당에 있던 돼지우리에 들어가 돼지들을 두들겨 패서 온 집안이 떠들썩해져야 끝났다. 언젠가는 돼지 우리 한구석에 쓰러져 잠이 드시는 바람에 잔뜩 화가 나신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방까지 끌고 오는 비상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어린 내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보통 때는 그렇게 인자하고 경우 바르고 말씀도 아끼시는 분이 술만 드시면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으며, 또 왜 그런 줄 알면서도 술을 계속 드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근무하던 시골 전매청에서는 아버지가 제일 높은 사람이어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직원들은 모두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 같았다. 사무실 옆에 관사가 있어서 나도 직원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았는데 그 분들이 모두 나를 특별히 귀여워해준 것으로 미루어 아버지에 대한 직장에서의 평판이 좋았을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에게도 술은 분명 문제였음에 틀림없다.
 
   결국 아버지는 현직에서 위장병이 발병하여 직장도 그만두신 채 그 병으로 쉰 셋이라는 나이에 숨을 거두셨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병 때문이 아니라 술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다. 그 뒤 내가 철이 들면서 만나 뵌 아버지를 아는 분들의 말씀으로 미루어 보면 아버지는 술 때문에 병을 얻었고 그 병으로 돌아가신 것이라는 생각에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아버지는 안주를 전혀 들지않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만 드셨다 한다.
 
   자라면서 어머니로부터 제일 많이 들은 말씀이 바로 술 많이 먹지 말라는 당부였다. 부전자전으로 술 잘 먹는 유전인자가 내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어머니의 걱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등학교부터 시골 집을 떠나 서울로 유학 와서 대학에 들어가자 어머니의 이런 걱정이 더 커졌다. 하긴 대학생이 되면서 술자리에 갈 일도 가끔 생겼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술 한 잔만 먹어도 금새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서 많이 마실 수 있는 체질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알코올 인디케이터라는 별명까지 붙었으랴. 산성인지 알카리성인지 구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알코올 성분이 들어있는지 여부를 알려면 내게 먹여보면 된다는 뜻에서 붙은 별명이었다.
 
   직장에 나와서도 술에 대한 과민반응은 나아지지 않아서 낮 술은 물론 저녁에 회식자리가 있어도 되도록 술은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일반화된 관행이었던 접대하는 자리가 문제였다.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것이 접대의 기본 예의다. 술 좋아하는 사람을 접대할 때는 죽으나 사나 술을 마셔야 했다. 술 좋아하는 사람은 왜 그리 많았던지, 어떤 때는 한 주일동안 서너 차례나 술자리에 가야만 할 때가 있었다. 술을 마시고 속이 나쁘면 화장실에 가서 일부러 토하더라도 끝까지 같이 마셔야 제대로 대접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음주 유전인자가 서서히 작동하여 나도 모르는 사이 술 실력이 점차 들었던 것 같다.
 
   연구기관에서 건설회사 경리책임자로 옮겼을 때의 일이다. 전임자의 업무인계 내용에 “H 투자금융 L차장과 H은행 K대리와는 대학 동창이고 아주 절친한 사이인데 이들이 술을 먹자고 하면 절대 같이 가지말고 술값만 결제하라.”는 웃지 못할 내용이 있었다. 두 금융기관이 모두 회사와 거래가 활발하여 친하게 지내야 할 처지였지만 워낙 이 두 사람이 두주불사로 소문이 나 있어서 이들과 대작을 하다가는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 인사를 나눌 때부터 “언제 한잔 하셔야죠.”하고 시작된 얘기가 몇 달이 지나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결국 내 쓸데없는 오기 때문에 술자리에 어우러지게 되었다. 소공동 소금구이집에서 세 병의 소주로 시작된 술자리가 자리를 옮겨가며 커티삭이라는 양주 네 병, 몇 병인지도 셀 수 없는 맥주에 이르기 까지 끝없이 지속되다가 결국 술에 취한 K대리가 넘어져 얼굴을 다치는 사고로 마감되었다. 그 일로 한 아무개 주량이 소문 나기도 했지만, 사실 눈치 채지 않게 드나들며 몇 차례씩 토하면서 견디었던 자리였다. 

   이런 접대 술자리가 여러 해 반복되었지만 술 때문에 절대로 실수하지 않겠다는 평소에 가졌던 각별한 의식으로 나는 어느 정도 자신을 지켜가고 있었다. 술 마시는 자리는 따라서 나에게는 즐거운 자리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행의 자리였다. 그러니 술 맛이 날 턱이 없었다. 술 맛을 모르니 술 마시고 싶은 생각도 물론 없었다. 집에 아무리 좋은 술이 있어도 손님이 와서 청하지 않는 한 언제나 있는 그대로 였다. 혼자서 술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차 이런 접대문화가 사그러들고 자가운전의 확산과 더불어 음주행태가 바뀌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술 먹는 기회가 줄어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 생전에 술 때문에 큰 걱정을 드리지는 않은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모두 어릴 적 아버지가 보여주신 술버릇에 대한 또렷한 각인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술 때문에 실수하지 않겠다던 나의 각별한 경각심도 어느 일순 무너져버렸다. 역시 건설회사에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회사 사정으로 많은 직원을 한꺼번에 해고했지만 퇴직금 줄 자금이 없어 며칠을 고민하다가 술자리에 어울리게 되었다. 그리 많이 마시지도 않은 것 같은데 홧김에 마시기 시작한 술이라서인지 금새 정신을 잃고 말았나 보다. 괴로운 몸을 뒤채다 눈을 떠보니 곁에서 걱정하고 있는 아내가 보였다. 언제, 어떻게 집에 왔는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무 것도 기억에 없었다. 나중에 들어서 안 이야기지만 직원들 대 여섯 명에게 떠메어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와서는 대성통곡을 하며 난동을 부렸다는 것이었다. 평소의 결심이 무너진 자괴감이 오랜 동안 떠나지 않았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토록 다짐을 했건만 그 뒤로도 두 세 차례 더 소위 필름이 끊기는 경험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 몇 년 동안은 거의 술을 입에 대지않고 지냈다. 그러다가 다시 술을 입에 댄 것은 아마 담배를 끊고 난 다음인 것 같다.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혼자 소주 한 두 잔씩을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밥 먹을 때, 아니면 밥 먹고 나서 마시는 몇 잔의 소주는 처음에는 마음을 적당히 이완시켜 편안한 느낌을 주다가 약간 취기를 느낄 때쯤이면 기분을 아주 좋게 만든다. 얼음을 가득 채운 유리잔에 소주를 2/3쯤 넣고 나머지 1/3을 토닉 워터로 채운 뒤 레몬 즙을 짜 넣어 섞어 마시는 내 소주 칵테일은 맛도 그럴듯해서 누구나 아무 거리낌 없이 마실 수 있다.
 
   혹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티소주라는 소주가 있었다. 그 맛이 아주 담백해서 내 칵테일용으로는 제 격이었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한꺼번에 10병쯤 사서 냉장고 넣어두고 마시곤 했는데 어느날 소주를 사러 갔더니 이 시티소주가 없었다. 며칠 후 다시 들렀는데 또 없는 것이 아닌가. 주인에게 물었더니 그 소주를 찾는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는데 그 동안에는 재고를 팔았지만 새로 받지는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몇 집을 더 다녀도 이 시티소주를 찾을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다른 소주로 바꾸었다. 그런데 우연히 이 이야기를 들은 우리회사 임원 하나가 시티소주 회사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아마 10상자도 넘는 술을 공짜로 얻어 먹었을 것이다.
 
   이삿짐으로 5상자나 되는 소주를 옮기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완전 알코올 중독자 하나가 이웃으로 이사 오는 것으로 오해했을 법하다. 실제 내 아내는 매일같이 마셔대는 나를 보고 여러 차례 알코올 중독을 걱정했다. 언젠가는 심장질환에 세계적 권위라는 김 모 박사가 출연하는 TV 방송이 있다며 “당신은 다른 일 다 제치더라도 이것만은 봐야 한다”고 하도 여러 번 강요하길래 그 프로를 보았다. 매일 술을 먹으면 절대로 안 된다는 얘기를 기대했던 아내의 생각과는 반대로 그 양반은 소주 반 병쯤은 매일 마셔도 아무런 해가 없고 오히려 심장병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반가운 말을 했다. 그 박사 덕택에 쓸데없는 아내 걱정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내 음주량이 늘어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마실수록 주량이 늘어 나는 것은 사실이다. 조그마한 핑계만 있으면 혼자 마시는 술이 반 병에서 한 두잔 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한 병도 마시게 되니 말이다. 그리고 반가운 이들과 어울리면 분위기에 따라 제법 두 세 병까지 비우고도 잘 견디니 말이다. 술 마시고 잘 견디느냐의 여부는 그 다음날 아침에 결정된다. 전 날 음주 때문에 어떤 영향이라도 받으면 술이 과한 것이라는 것이 내 과음에 대한 기준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걱정거리가 많은 세상, 내 술 때문에 아내나 자식들에게 해야 할 걱정거리 하나를 더 보탠다면 그건 안될 일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일찍이 몸으로 보여주신 교훈을 잊어버리는 짓이다.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지금 즐기는 대로 저녁마다 소주 반 병을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 건강이 나빠지면 그것마저 할 수 없을 것이니 건강을 지켜야겠지. 술 마시자고 건강을 지키겠다면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인가? 그렇지만 재미있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건강 아닌가. 다른 재미있는 생활 전혀 없이 오로지 건강을 지키는 것 만이 우리의 목표가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큰 일이다. 아직까지 어디 크게 아픈 데 없는 건강을 주신 아버지 어머니 덕택에 이런 허튼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으면 어제 저녁에 마신 소주가 아직 덜 깨서 술주정을 하는 것일까?   ( 2001.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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