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는 결코 화려하거나 위대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향기가 듬뿍 넘쳐나지도
않는다.그러나 나는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산자락에서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들
국화에 야릇한 애정을 느낀다.
빛바랜 보라빛 저고리에 칙칙한 연두색 치마를 걸친 가르다란 몸매는 가을 바람
에도 흐느적거리고 저녁노을에 비친 핏기여린 얼굴은 붉기보다는 오히려 누리다
고나 할까?
짧게 동여맨 머리에 고개조차 바로 들지 못하고 살며시 옆으로 돌린 모습은 지
나간 날에 짓눌림인지?
어린 여러 자매를 두고 조실한 부모를 대신하여 동생들 뒷바라지에다 출가시키
고 난 후 오랜 인고의 세월을 얼굴에 새긴 맏언니로서 이제야 늦은 가을날에 방
울 장사를 따라 낭군을 만나기 위하여 동구 밖에로 나서는 노처녀의 뒷모습에
회한이 여울진다
누가 그 언니의 겉모습을 가름하겠냐마는 청순한 마음은 이 가을 하늘을 맑고
푸르게 물들게 하고 처마밑 풍경마저 울려 놓구나
들국화같은 여인!
보잘 것 없는 외양이지만 그 넉넉한 가슴에다 세파에 지친 나그네의 설움을 달
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