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얘기를 하려다 보니 갑자기 이것이 생각 났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담배 그리고 교통사고
담배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는 아니고 우리 생애에 일어난 담배에 얽힌 내 경험을 얘기하려고 한다. 나는 담배를 늦게 배운 편이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부터 한 두 가치씩 피워 보던 것이 어느 순간 습관이 되고 나도 모르게 늘어 한참 많을 때는 하루에 세 갑씩이나 피우게 되었다. 내 과도한 흡연을 걱정하며 어머니가 말씀하신 ‘늦게 배운 도둑 밤 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담배를 엄청나게 피웠고 참 좋아했다.
건강문제, 특히 그 놈의 암이라는 것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갑자기 매도되기 시작한 것이 흡연이 아닌가 한다. 한동안 여기 저기 담배 얘기가 나오다가 마침내 담배는 암의 주범으로 둔갑하였고, 간접흡연 피해가 보도되면서 담배 피우는 사람은 온 세상에 암을 전파하는 몹쓸 부류로 치부되기 시작하였다.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흡연을 즐겼다. 아프지도 않고 오래 사는 줄 담배 피는 시골 할아버지가 한 두 분이냐는 주장을 내 세우면서. 또 담배하면 생각나는 영국 처칠 수상의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담배 피우는 것을 뭐 자랑거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담배 즐기는 것 때문에 주눅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세 갑이라는 양이 너무 과한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그 양을 하루 한 갑까지 줄여서 하나의 기호 식품으로 죽을 때까지 즐기자는 정도가 내가 담배에 대해서 가졌던 당시 생각 전부였다.
그런데 업무로 해외 출장이 잦아지기 시작하면서 이 담배는 하나의 고통으로 등장하였다. 처음 미국에서 시작된 금연운동이 제법 심해지더니 차츰 그 분위기가 유럽으로 드디어 동양으로까지 전파되어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장소가 줄어들었고 마침내 담배 피우는 사람은 마치 도둑질하는 것처럼 꼴이 초라해졌다. 비행기 안에서는 흡연석이 점차 줄어들다가 아예 없어져서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규제되었다. 담배 피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장거리 여행을 해야 할 때 제일 걱정되는 게 바로 담배다. 공항 안에 만들어 놓은 손바닥만한 흡연실에서 탑승 직전까지 연거푸 피워댄 담배의 약효도 비행기가 이륙한 뒤 길어야 한 두시간 뿐, 시간이 지나면서 도착할 때까지 그 놈의 담배 생각에 안절부절 못했던 치사한 기억이 셀 수없이 많다.
미국 시카고 근처 시골 어느 회사에 방문했을 때는 정문에 “SMOKE FREE CAMPUS”라는 표어를 대문짝만하게 써 붙여놓고 건물 안에서는 물론 회사 울타리 안 어디서도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 담배와는 전생부터 원한이 맺힌 것 같은 회사도 보았다. 하루 종일 회의를 해야 하는데 그 날 체감온도는 영하 40도(영하 40도에서 섭씨와 화씨가 만난다는 사실도 그 때 알았다), 동상을 각오하고 10분쯤 걸리는 정문까지 걸어가든지 담배를 참든지 결정해야 하는 정말 고약한 경우도 경험하였다. 회의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이런 온갖 고난과 수모를 겪으면서 그럴수록 오기로 담배를 더 즐겼다. 공해를 유발하는 다른 것들은 그대로 둔 채 유독 담배 피는 사람들만 한 구석으로 몰아 붙이는 담배 안 피는 사람들이 밉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도 흡연권을 줘야 된다고 반응 없는 항변도 하면서.
그렇게 피던 담배를 끊었다. 담배 많이 피는 사람들 가운데 한 두 차례 금연을 시도하지 않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때까지도 금연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만큼 담배를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웬만한 사람들이 무수히 반복하는 ‘금연 3일 후 흡연’을 보면서 내가 금연을 한다는 것에 도무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때 내가 근무하던 회사 회장과 중역 전체 식사 자리에서 금연이 화제가 되었는데, 그 회장이 한다는 말씀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 아무개는 절대로 담배를 못 끊는다, 만일 저 친구가 담배를 끊으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고 장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출장 수행할 때 담배 많이 핀다고 구박한 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나를 모욕해야 하나 하고 부아가 끓어 올랐다. 자기도 담배를 피우면서 말이다. 화김에 나는 하지 않아야 할 내기 약속을 해버렸다. 누가 더 오랫동안 금연하는지를 두고서 말이다.
그 날 저녁까지는 그럭저럭 잘 견뎠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회사에 출근하자 생전 처음 경험하는 증상이 일어났다.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마음이 불안하고 가슴도 두근두근, 머리 속은 텅 비어서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 뿐 아니라 얼굴도 달아오르고 손도 떨리는 것 같았다. 집중은커녕 전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반나절 그리고 하루 밤 새 담배를 피우지 않은 증상으로는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내 몸에 나타난 현실적 증상을 어떻게 부인하랴. 나는 흐트러진 생각을 수습하여 정말 금연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결심을 그제서야 하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동안 담배가 이렇게 큰 영향을 내 몸에 끼쳤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나서 한 결심이었다. 그 날 이후 일주일 동안 나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비몽사몽 속에서 시간을 흘려 보냈고, 거의 산 송장이나 다를 바 없이 지냈다.
그 뒤에도 수시로 참을 수 없는 강도로 담배 피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고 만일 내 스스로 체험한 그토록 생생하고 심각한 금단현상이 아니었더라면 금새 그 유혹에 빠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꿈 속에서 맛있게 담배를 빨아드리다 잠을 깬 것도 여러 번, 거의 3년 동안은 담배와의 전쟁이라 부를 만큼 끊이지않는 욕망과 유혹과 다투어야 했다. 담배를 의식하지 않게 되는 데는 한 5년 정도가 걸렸고 그러나 그 후에도 담배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어서 몇 년간 다시 담배를 피운 적도 있다. 아무튼 담배는 중독임에 틀림없다. 지금도 술자리나 아니면 자유스러운 자리에서는 담배가 피우고 싶고 한 두대 씩 피울 때도 있다. 다시 중독되지 않으리란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중독되어도 좋다고 나를 방치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담배와 나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아는 애연가 한 분의 금연에 대한 체험은 아주 색다르다. 부인과 친구들의 끈질긴 회유와 협박에 즐기던 담배를 끊었다. 지독한 금단현상으로 아무 정신없이 운전하던 중 통행료를 내려고 서있던 차를 들이받아 4중 추돌사고라는 대형사고를 냈다고 한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담배 피우고 싶다는 생각 밖에는 다른 생각이 없어 순경에게 담배 한대를 얻어 피웠다는 얘기를 들었다. 에어 백 덕택에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에어 백이 없었더라면 큰 일을 당할뻔했다는 것이었다. 그 사고 이후 그 분은 죽을 때까지 담배 피워도 좋다는 공식 재가를 부인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담배 끊고 일찍 죽는 것보다는 담배 피우더라도 오래 같이 사는 게 낫겠다는 현명한 부인의 판단이라고 자랑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 특히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이 금연하려고 할 때 꼭 기억해 두어야 할 체험이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는 금연휴가라는 특별한 제도가 하나 있다. 누구든지 금연을 위해 필요하면 일주일 동안 휴가를 주는 것이다. 금연으로 생명을 잃는다던가 아니면 중요한 결정을 잘못 내리는 화를 면하기 위한 제도이다. 금연하다 실패하면 휴가를 반환해야 하는데 아직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애연가들이 놀고 싶을 때 악용할 가능성도 있지만, 내가 참고 있는 담배를 다른 사람들은 아직까지 즐기는 것이 억울하여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금욕주의자로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없애지 않을 생각이다. 나와 내기를 했던 그 회장은 내기에 졌지만 손가락은 말짱했고, 한 아무개는 상종도 할 수 없는 독종이라는 비난으로 자신의 입지를 지켜 나갔다. 그러나 사실 그 분도 내가 진짜 담배를 끊은 내막은 모르실 것이다. 그런 귀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준 그 회장께 감사해야 했는데 그럴 사이도 없이 그 분과 헤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밤중에 일어나 재떨이를 뒤지며 꽁초를 찾는 거지 같은 일은 없다. 신호대기하고 있는 택시 운전사에게 담배 한대만 하고 구걸하는 일도 사라졌다. 밥만 먹으면 베란다로 직행하는 일도 없어졌다. 어디 가든 담배를 피워도 되는지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다. 불기가 남은 담뱃재가 떨어져서 놀라거나 사고를 낼 일도 없다. 새로 맞춘 양복에 구멍이 뚫려 아까워 할 일도 없다. 가끔 주머니를 뒤집어 담배 가루를 털어낼 일도 없다. 재떨이를 비우거나 닦을 일도 없어졌다. 혹시 내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나지 않을까 마음 쓸 일도 없다. 손가락 끝이 노랗게 변색될 이유도 없다. 14 시간 걸리는 비행기도 아무 부담 없이 탄다. 회의시간이 얼마가 걸려도 걱정할 일도 없다. 담배 때문에 아내와 싸울 일도 없다. 담뱃값이 올라도 신경질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아직까지 담배 피우는 사람들 약 오르라고 한번해본 소리다.
( 2001.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