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방학이다."의 제목 옆에 꼬마들이 뛰어나오는
초등학교 정문 앞 사진은 늘 나오는 기사 중엔 꽤 즐거운 모습이다. 우리 모두가 꼬마들의 즐거운 표정을 동감할 수 있는 선배들이기 때문일까. 나는 선생이지만 그 꼬마들과 같은 그런 기분으로 올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7, 8월 달력 개인일정표에 적어놓은 순서에 따라 안과에 들렸다. 꽤 오랜만의 병원 방문이다. 의사는 아주 젊고 똑똑하다. 개인 병원이지만 기기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젊은 의사의 태도가 어딘가 마음에 걸린다.
"이런 생각은 나의 직업병이거나 노인병일 수 있겠다. 아님 합병증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약방에 들리니 거기 젊은 약사는 아주 친절하기 그지없다.
우리가 살면서 여기 저기서 항상 느끼는 이 차이가 뭘까? 그들은 "자신이 베푸는 입장"에 있다는 생각에 빠져있기 때문인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상대방의 상처를 요구하는 것인가?
어찌되었던 더 가진 자만이 베풀 수 있고, 그 자체가 축복 받은 일이라면 더 이상의 보상이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 "베풀며 사는 사람"은 상대방을 염려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초등학교 정문 앞 사진은 늘 나오는 기사 중엔 꽤 즐거운 모습이다. 우리 모두가 꼬마들의 즐거운 표정을 동감할 수 있는 선배들이기 때문일까. 나는 선생이지만 그 꼬마들과 같은 그런 기분으로 올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7, 8월 달력 개인일정표에 적어놓은 순서에 따라 안과에 들렸다. 꽤 오랜만의 병원 방문이다. 의사는 아주 젊고 똑똑하다. 개인 병원이지만 기기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젊은 의사의 태도가 어딘가 마음에 걸린다.
"이런 생각은 나의 직업병이거나 노인병일 수 있겠다. 아님 합병증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약방에 들리니 거기 젊은 약사는 아주 친절하기 그지없다.
우리가 살면서 여기 저기서 항상 느끼는 이 차이가 뭘까? 그들은 "자신이 베푸는 입장"에 있다는 생각에 빠져있기 때문인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상대방의 상처를 요구하는 것인가?
어찌되었던 더 가진 자만이 베풀 수 있고, 그 자체가 축복 받은 일이라면 더 이상의 보상이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 "베풀며 사는 사람"은 상대방을 염려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더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