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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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방을 팝니다
: 헌 서방을 팝니다
: 반 십 년쯤 함께 살아
: 단물은 빠져 덤덤 하겠지만
: 허우대는 아직 멀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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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는 6척에 조금은 미달이고
: 똥배라고는 할 수 없으나
: 허리는 솔찬히 굵은 편,
: 대학은 나왔으나 머리는 깡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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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은 있으나 수입은 모릅니다.
: 아침에 겨우 일어나 출근하고
: 밤늦게 용케 찾아와 잠들면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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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잔한 미소 한 번,
: 은근한 눈길 한 번 없이
: 가면 가는 거고 오면 오는 거고.
: 포옹이니 사랑놀이니
: 달착지근한 눈맞힘도
: 바람결에 날아가버린
: 민들레 씨앗된 지 오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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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이며 미술이며
: 영화며 연극이며
: 두 눈 감고 두 귀 막고
: 방안의 벙어리된 지 오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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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시절의 은근함이며
: 신혼초야의 뜨거움이며
: 생일이며 결혼기념일이며
: 이제는 그저 덤덤할 뿐,
: 세월 밖으로 이미 잊혀진
: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일 뿐,
: 눈물방울 속에 아련한 무늬로 떠오르는
: 무지개일 뿐, 추억줄기일 뿐.
: 밥 먹을 때도 차 마실 때도
: 포근한 눈빛 한 번 주고받음 없이
: 신문이나 보고 텔레비나 보고,
: 그저 덤덤하게 한마디의 따근따끈한 말도 없고.
: 매너도 없고 분위기도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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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흔한 맥주 한 잔
: 둘이서 나눌 기미도 없고.
: 일요일이나 공휴일의
: 들뜨는 나들이 계획도
: 혼자서 외출하기, 아니면 잠만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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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씀씀이가 헤퍼서 말도 잘해서
: 밖에서는 스타같이 인기 있지만
: 집에서는 반 벙어리,
: 자린고비에다 술주정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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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방도 헌 서방이니
: 헐값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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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빈 가슴에 바람 불고
: 눈 비 내리어
: 서방 팝니다, 헐값에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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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정거리듯 비틀거리며 말은 하지만
: 가슴에는 싸한 아픔
: 눈물 번지고
: 허무감이 온몸을 휘감고 돌아
: 빈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 서방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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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 서방 팝니다며 울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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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흩어진 마음,
: 구멍이 송송 뚫린 듯한
: 빈 가슴을 추스리며
: 안으로만 빗질하며 울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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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향봉 시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