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태영 동문이 쓴 글은 너무나도 슬픈 " 우리 민족의 아픔 이야기" 입니다. 우리 친구들이 군에 있었을 때도 작은 전투가 있었을테고, 우리 아들들이 지금도 보초를 서고 있는 소위 비무장지대가 비무장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무장화된 화약고의 하나라는 건 다 알려진 사실이지요. 거리도 점점 좁아져 어떤 곳은 코를 맞대고 있다는군요. 언제까지 아까운 남북의 청년들이 이렇게 다쳐야 됩니까? 누구를 위한 대결입니까?
우리땅은 너무나 작아서 만약 이 땅위 어디서든 전쟁이 터지면 한민족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없지요. 강적인 중국과 미국의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은 이제 없어야하고 그러려면 남북이 손잡고 절대로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고 해야합니다. 사이 나뻐진 시댁과 친정 부모들이 양쪽에서 밀고 밀쳐 갈라서라고 부추겨도 부부가 한 마음으로 살아보자고 애써보는 격이랄까?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남북은 서로 싸워서 이겨내야 할 적으로 알고 살았습니다만 다음 전쟁은 남북이 싸우기를 원하는 외래종 들에 의해 한민족의 종자가 사라질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올해 처음 온 가뭄에도 야단인데 벌써 83년부터 가뭄과 홍수로 식량난이 극심하다고 합니다.
120살 까지 살 수 있다는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는 같이 살아가야 할 북측 아이들이 결핵, 영양실조, 말라리아, 이질 등으로 병들어 있답니다. 이북 결핵균이나 말라리아 모기가 비무장지대를 알고 남으로 안 날아올까요? 북측 들쥐나 물고기들이 휴전선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갈가요? 영양실조로 정신적장애가 생기기도 한답니다.
14-17일 금강산에서 최초로 열린 남북의 각계, 각층, 각종 종단 등 245 민간 단체들이 모인 대토론회에 개신교단 여성대표로 참석해 감격의 몇일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친정, 시댁이 모두 피난민 가족입니다. 어떻게 내가 배우고 듣던 그 무서운(?) 공산주의자들과 산행을 하게 되다니요!! 그들이 너무나 친절해서 허망하기까지했지요. 누구 말대로 거기도 사람들이 삽디다. 같이 간 가수 김 원준이 "직녀에게" 란 노래를 불러 우리를 울렸습니다. 가사는 지금 잊었지만 (시인 문병란 시에 김 원준 곡, 아는 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음) 눈물로 은하수 녹여 다시 만나자는 내용이었어요.
듣던대로 우리끼리, 자주적으로 잘 살자는 신념이 강하더군요,사실 그게 주체사상인데 별로 거슬리지 않았음은 지금 일본 교과서문제나 미국 NMD문제 같은 것들 때문이었나 봅니다. 그들이 우리들을 예의를 다해 극진히 대접하고 서로 솔직히 궁금한 일들을 자유롭게 묻고 대답했지요. 평양에 교회가 두곳 가정교회도 500여개, 신학교 하나, 천주교회도 있고, 사찰도 있답니다. 물론 당에서 허락한 것들이지만.
경제 문제를 많이 공부해 가지고 온 듯 잘 알고 있더군요. 인터넷 사업에 관심 많고 어린이들에게 열심히 컴퓨터 교육시킨다고요. 현대같은 큰 기업도 쓰러지게 놔두는 자본주의를 궁금해 하더라고요. 고성군에 시설과 장비를 잘 갖춘 현대의 유람선 사업을 그만둔다니 자본주의 경쟁체제가 실감이 나나봅니다. 새마을 지도자, 자유총연맹 같은 단체와 한총련, 범민련 같은 상극이었던 단체들까지 같이 참석했으니 진행은 순조롭지 않았지요. 남쪽에서 426명 북쪽에서 345명 760여명이 모여서 밥도 같이 먹고 금강산 구룡폭포까지 산행을 하고 사진도 같이 찍고 노래하고 이야기들도 많이 했습니다. 지난번 에 갔을 때는 북측 사람 뒷배경으로 들어가는 사진까지도 필름을 뺐었는데 이번에는예쁜 북처녀들하고 남쪽 남자들이 신나게 사진찍었고. 청년들끼리도 술 마시고, 아마 연애하는 짝도 생겼을 것입니다. 어느 군에는 필립핀 여성들이 40여명이 단체로 시집와 애낳고 산다는데 필립핀 이세보다는 같은 민족 처녀가 (본인이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님) 좋지 않을지요. 북 여성들은 참 피부가 곱고 이쁘고 말할 때는 애교가 넘치고 겁나게 똑똑한게 아마도 뽑혀(?) 온 인재들이라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자들은 담배와 술을 많이하지만 활달하고 서글서글 농담들을 잘 해서인지 이북 피난민이 많은 우리교회 목사,장로, 집사님들 같았어요. 청년들이 어른 손님들 앞에서도 담배를 자연스레 피우는 건 뜻밖이었고요.
아직도 흥분이 가시질 않아서 너무 길게 써 읽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결론은 민간인들이 이런 저런 일로 자주 교류하고 경제적으로도 상호 이익을 주면서 활발히 교류해서 미움에서 화합으로 "다름"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짧게해서 같이 "절대로" 우리땅에서 는 전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땅은 너무나 작아서 만약 이 땅위 어디서든 전쟁이 터지면 한민족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없지요. 강적인 중국과 미국의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은 이제 없어야하고 그러려면 남북이 손잡고 절대로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고 해야합니다. 사이 나뻐진 시댁과 친정 부모들이 양쪽에서 밀고 밀쳐 갈라서라고 부추겨도 부부가 한 마음으로 살아보자고 애써보는 격이랄까?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남북은 서로 싸워서 이겨내야 할 적으로 알고 살았습니다만 다음 전쟁은 남북이 싸우기를 원하는 외래종 들에 의해 한민족의 종자가 사라질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올해 처음 온 가뭄에도 야단인데 벌써 83년부터 가뭄과 홍수로 식량난이 극심하다고 합니다.
120살 까지 살 수 있다는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는 같이 살아가야 할 북측 아이들이 결핵, 영양실조, 말라리아, 이질 등으로 병들어 있답니다. 이북 결핵균이나 말라리아 모기가 비무장지대를 알고 남으로 안 날아올까요? 북측 들쥐나 물고기들이 휴전선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갈가요? 영양실조로 정신적장애가 생기기도 한답니다.
14-17일 금강산에서 최초로 열린 남북의 각계, 각층, 각종 종단 등 245 민간 단체들이 모인 대토론회에 개신교단 여성대표로 참석해 감격의 몇일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친정, 시댁이 모두 피난민 가족입니다. 어떻게 내가 배우고 듣던 그 무서운(?) 공산주의자들과 산행을 하게 되다니요!! 그들이 너무나 친절해서 허망하기까지했지요. 누구 말대로 거기도 사람들이 삽디다. 같이 간 가수 김 원준이 "직녀에게" 란 노래를 불러 우리를 울렸습니다. 가사는 지금 잊었지만 (시인 문병란 시에 김 원준 곡, 아는 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음) 눈물로 은하수 녹여 다시 만나자는 내용이었어요.
듣던대로 우리끼리, 자주적으로 잘 살자는 신념이 강하더군요,사실 그게 주체사상인데 별로 거슬리지 않았음은 지금 일본 교과서문제나 미국 NMD문제 같은 것들 때문이었나 봅니다. 그들이 우리들을 예의를 다해 극진히 대접하고 서로 솔직히 궁금한 일들을 자유롭게 묻고 대답했지요. 평양에 교회가 두곳 가정교회도 500여개, 신학교 하나, 천주교회도 있고, 사찰도 있답니다. 물론 당에서 허락한 것들이지만.
경제 문제를 많이 공부해 가지고 온 듯 잘 알고 있더군요. 인터넷 사업에 관심 많고 어린이들에게 열심히 컴퓨터 교육시킨다고요. 현대같은 큰 기업도 쓰러지게 놔두는 자본주의를 궁금해 하더라고요. 고성군에 시설과 장비를 잘 갖춘 현대의 유람선 사업을 그만둔다니 자본주의 경쟁체제가 실감이 나나봅니다. 새마을 지도자, 자유총연맹 같은 단체와 한총련, 범민련 같은 상극이었던 단체들까지 같이 참석했으니 진행은 순조롭지 않았지요. 남쪽에서 426명 북쪽에서 345명 760여명이 모여서 밥도 같이 먹고 금강산 구룡폭포까지 산행을 하고 사진도 같이 찍고 노래하고 이야기들도 많이 했습니다. 지난번 에 갔을 때는 북측 사람 뒷배경으로 들어가는 사진까지도 필름을 뺐었는데 이번에는예쁜 북처녀들하고 남쪽 남자들이 신나게 사진찍었고. 청년들끼리도 술 마시고, 아마 연애하는 짝도 생겼을 것입니다. 어느 군에는 필립핀 여성들이 40여명이 단체로 시집와 애낳고 산다는데 필립핀 이세보다는 같은 민족 처녀가 (본인이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님) 좋지 않을지요. 북 여성들은 참 피부가 곱고 이쁘고 말할 때는 애교가 넘치고 겁나게 똑똑한게 아마도 뽑혀(?) 온 인재들이라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자들은 담배와 술을 많이하지만 활달하고 서글서글 농담들을 잘 해서인지 이북 피난민이 많은 우리교회 목사,장로, 집사님들 같았어요. 청년들이 어른 손님들 앞에서도 담배를 자연스레 피우는 건 뜻밖이었고요.
아직도 흥분이 가시질 않아서 너무 길게 써 읽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결론은 민간인들이 이런 저런 일로 자주 교류하고 경제적으로도 상호 이익을 주면서 활발히 교류해서 미움에서 화합으로 "다름"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짧게해서 같이 "절대로" 우리땅에서 는 전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