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최근 월간 <문학공간>에 실린 저의 졸작입니다. 오늘같이 감정이 안개 속에 갈아앉아있을때 애송하는 시에 관한 글이라 다시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시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들키고 말지만
안개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을 알지 못한다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가까이 있슴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 멀어져감을 두려워한다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류시화의 시 <안개 속에 숨다>의 전문 -
위의 시는 근래 베스트셀러가된 류시화의 첫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에 실린 첫 작품이다. 이 시는 안개 속에 가려져 있으면서도 안개에 가려진지 모르게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나무 뒤에 숨는 것과 대비시켜서 표현한 작품이다. 나무 뒤에 숨으면 들킬까 불안하고 그래서 고독해지기도 한다. 안개 속에서는 자신이 안개 속에 있다는 의식조차 없이 혼미하고 고독하다는 의식도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안개가 걷히면 모든 것은 명징하게 노출되고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여기서 안개 속의 모습은 혼미하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고, 안개가 걷힌다는 것은 삶의 본질 또는 내면의 자아를 발견하는 자기 성찰이라고 여겨진다. 안개가 걷히고 서로를 바라본다는 것에서 바라보는 상대는 타인이 아니라 바로 인간 본래 모습으로서의 자기 자신일 것이다. 그리고 이 안개를 걷어내는 작업은 이 시인이 즐겨 체험하는 명상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온통 나라 안팎이 어지럽고 짙은 안개 속에 가려진 요즈음 잡념으로 머리가 어지러워질 때 이 시를 가만히 음송하면 머리 속의 안개가 걷히고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류시화 시인은 1980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고, 3년간 동인 활동을 하다가 83년에 홀연히 세속을 버리고 구도생활로 들어갔다. 90년까지 수도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외국의 명상집을 40여권 번역하는 한편 인도와 미국 등 외국의 여러 명상센터에서 명상에 몰두했다.
이후 91년 한속한 그는 다시 왕성한 시작 활동을 펴고 있는데 그의 시는 자연을 소재로 하되, 명상을 통한 내면의 자아발견과 모든 세속적인 허구의 덧없슴을 노래하고 있다. 그 덧없슴을 깨달음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자기 속의 안개를 걷어낼 수 있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