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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2001.05.08 00:00

이사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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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이사 많이 한 동창들의 이사 예찬을 읽고 만만치 않은  내 이사 기억들이 떠오르고 이사가 정말 하고 싶다고 하거나 안하고 싶다고 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에 동감한다.
71년 3월 미국 보스톤에 도착하여 YWCA  기숙사에 살았다. 한국 아가씨가 한명 있었는데  둘이 중국 식료품 점에 가서 오징어 한 마리 사다 구어 먹다  시체 태우는 냄새라고 온 기숙사가 뒤집혀져  도망질 쳤다.
3개월 후 결혼식끝내고 가방 두개 달랑 들고 미국에서  대학 기숙사로는 가장 오래된  남자 기숙사에 처음 들어가 사는 여자가 되는 영광과 고난을 맛보았다. 
 남자 기숙사를 남녀 공동 기숙사로 바꾸기 위해 시범적으로 가난한 한국 신랑 학생에게 방을 하나 더 주고 신부를 데리고 들어와 살게 한 것이다.
한 학기 후 여학생들이 몇명 더 들어 올 때까지는 물론 여자 샤워나 화장실도 없었으니 벗은 남학생들 때문에 우리 순진한  새신랑(25세)은 화장실 앞에 서서 교통정리로 애먹고.  하긴 그 당시 스트리킹이라는 게 유행해서 길이나 캠퍼스에서  홀딱벗고 얼굴에 봉지쓰거나 양말한짝, 넥타이 하나만 달랑 매고 뛰는건 흔했다.
50명이 함께쓰는 공동부엌에서 요리 할 줄 몰라  멍청히 서서   동양요리 구경하려는 서양애들 애태우고.
 일년반을 견디다가 학교앞 100년된 집 서향, 지붕밑 방으로 이사 한국 유학생 영사관(?)역활하고. 지붕밑 서향방 여름은 저녁을 먹을 수 없게 덥다. 매일 밥솥째 들고 바닷가에 나가 밥을 먹을 수 밖에. 그래서 지금도 내가  노을바라보기를 좋아함.
74년 귀국, 40만원짜리 단칸방에 미국에서 짐 부쳐 온 궤짝들로 책장,옷장 대신. 그래도 그 궤짝이 현서울 시 부시장 강 홍빈 (그당시 MIT학생)씨가 손수 재고 짜르고 망치질 해서 만들어 준 것이다.
부엌이 없는 방이라 밥은 매일 연세대 식당에서 사먹고  나는 대학원엘 다녔다.  3개월 후 주인이 무슨 교수네가  살림 하나 없이 대머리 남편과 미니스커트 입은 아내가 매일 같이 나갔다 들어왔다 하니 이상한 부부라고 방을 내달래서 또 이사.
그당시 호화 맨션 두개 가지신 분이 집을 팔 수 없어 집 보아주는 조건으로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팔자에 없는 300평 맨션에서  일년은 잘 살았다. 오일 파동 후라서 전임 강사 월급으로는 비싼 기름값을 댈 수가 없었다. 자진해서 눈물을 뿌리며  지금의 성산동 뚝방 밑 판자촌 동네 신흥주택   미니 지하로 이사나옴.
 난 서울에도 수도 안 나오고 변소도 안 쳐가고( 상상에 맡김), 병원 가서 애 낳는 여자가 없는 동네가 있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하루는 그 뚝방으로   백창숙이  자가용 타고 놀러와 보니 한심했던지 그 자리에서 계를 조직해  일번을 날 주면서 그 동네  새로지은 새마을 연탄보일러에 수세식 화장실  삼층 아파트로 이사하도록 도와줘 또 이사.
 아침마다 뚝방을 20분 걸어나와 모래내에서 버스타는데 그 때는 애도 없고  그런 동네에 사는 것도 다 재미였다. 우리는 결혼 6년째에야 겨우 첫딸을 낳았다.
아직도 이사는 이야기는 더 많으나 벌써 읽기 지루 할 만큼 썼으니 줄여야겠다.
 78년 다시 미국가서 이사는 몇번 더 했고,  지금 한국 방문 중인 김 영남 동문과 같은 코넷티컷주에 살았다, 동네는 김동문네는 미국에서 세금 제일 많이 내는 동네고 우리는 학생촌이다.
말이 나온 김에 김 영남 동문 아들은 피아노와 작곡에 소질이 있어  유명 TV 토크 쇼에도 나왔었다. 자세한 것은 김 영남 씨 에게 20 일 듣도록.
 뉴욕 이사와서는  맘 좋은 신랑하고 바닷가 근처에 사는 노 명자랑 옆에 살아 뉴욕동창회 파티를 그집에서 몇번 했다. 두 부부가 얼마나 유머가 있는지.
다시 86년 한국에 와서 또 몫돈이 없어서 이번에는 원주에 가서 살았다. 그 곳 초등학교가 아주 좋았다.
 지금도 고맙다. 우리애가 제일 먼저 뛰어가 본 곳이 화장실인데 수세식에 깨끗하고 수영장까지 았었다.
그 수영장에는 이가 둥둥 떠 다니기도 했으니 머리에 이가 올라온 애를 참 빗으로 머리를 박박 빗겨 내리기도 했다. 어떤 집은 이잡는다고 머리에 농약을 발라 애 잡을 뻔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다.
  미국 돌아가자고 우는 애들에게 , 우리중 고등 학교 조회서면 앞에 있는 애들 곤색 등에 하얀 이들도 운동하러 나왔단 이야기도 해 주었다. 그 때 우리들 디디티 하얗게 뒤집어 쓰기도 했는데 아직은 후유증이 안나타난건지?
 정말 뜻밖으로 시골학교 교장선생님이 아주 뜻 있는 분. 겨울에는 애들하고 땅을 파고 비닐깔아 스케이트장도 만드시고 청게천에서 고물 스케이트를 잔뜩 실어다 풀어 놓아서 아무나 맞으면 신고 타게 하셨다. 그 학교에서 스케이트 선수가 몇명 나왔다.
 우리 애를 위해 인근 미군들 불러  영어로 이야기 하게 하고는 통역도 시키시고  바이얼린 부도 만들었다.
87년 원주민에서 드디어 서울 시민이 되어 아직도 강북에 산다 .
현미자랑 같은 아파트에서 살아 처음 몇년간은 아침마다 같이 산에도 갔으나 지금은 서로 바빠 오다가다 주차장에서 만나 안부를 묻지만 늘 든든하다.
대한민국은 서울 민국이고, 강북은 강남보다 10년은 뒤졌다고?
아마도 난 계속 강북에 살게 될 것같다. 난 신촌 근처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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