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서글픈 계절이다. 시들어가는 풀밭에 팔베개를 베고 누워 유리알처럼 파랗
게 갠 하늘을 고요히 우러러 보노라면 마음이 까닭없이 서글퍼지면서 눈시울에 눈물
이 어리는 것은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감정이다..."
이 글 한 구절이 지금 이토록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니리라. 이런 서글
프고 애달픈 계절,외롭고 고독한 계절이 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그리고
지나온 인생을 생각하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그래서 가을을 사색
의 계절이라 했던가.
"영혼의 스승"으로 불리는 인도의 라즈니쉬도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다.
진리탐구를 위해 태어난 그는 명상을 통해 인간의식의 최고 정점인 깨달음에 도달
했다. 많은 구도자들은 그를 살아있는 석가나 예수로 여긴다. 진리를 쫏다보니 제도
권 종교들의 모순을 지적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다.
기독교국인 미국에서는 범법자로 몰려 추방당하는 등 세계를 순회하는 동안 21개국으
로부터 추방 또는 입국을 거부당했다. 그는 대학 단체 등의 강연 때마다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진정한 자아,삶과 죽음을 초월한 자신을 찾기 위해 명상과 각성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4년 동안의 묵언 후, 재개한 그의 강연은 "말없는 자의 말"로 회자됐고 한마디 한마
디는 "내 안의 나"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그를 따른 제자만도 세계
도처에 25만명이나 된다니 그는 우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내가 그에
게 더욱 흥미를 갖게된 것은 그의 묘비에 적힌 글 때문이다.
오쇼 라즈니쉬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다.
다만 1931년 12월 11일부터
1990년 1월 19일 사이
이 지구를 방문했다.
이 비문은 인간의 육체는 껍데기에 불과하며 영혼은 영혼불멸이라는 뜻을 담고있다.
그리고 지구 외에도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 즉외계가 있으며 누구나 다음 생에서
는 그곳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이 글을 되뇌며 혼자 생각하고
상상의 날개를 펴는 시간은 즐겁기까지 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삶이 끝나면 모든 것이 소멸된다고 생각한다. 뭇 사람들의 이같은
고민에 대해 라즈니쉬는 "모든 것은 변하고 흘러간다. 어린이는 젊은이가되고 젊은
이는 노인이 된다. 삶은 죽음으로 돌아가고,죽음은 삶으로 돌아온다. 모든 것은
연속성의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단 한번의 생 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저 "남보다 더 잘 살기"만을 갈망하며 이것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이 갈망은 인간을 정신보다는 물질에 더욱 집착하게 만들고 쾌락과 탐욕에 젖게 한
다.
굳이 명상을 통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생이 영원하다고 알게 될 때 삶의 질은 한결
달라진다. 인간의 궁극적 목표가 자신의 "진화"임을 알게 되고 이목표를 향해 부단
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 노력은 삶의 이치를 깨닫게하며 여유와 용서와 이해를
갖게한다. 그리고 가진 것이 없어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게 한다. 라즈니쉬는
일생의 마지막 강연을 이렇게 마감했다. "선사는 삶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죽음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완성에 이른 사람은 삶을 사랑하며 죽음도
사랑한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아무런 구별도 구분도 없다."
진리만을 추구하며 한평생을 살다 간 라즈니쉬의 "마지막 말"은 반드시 선사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영혼의 존재를 터무니 없는 소리
라고 부정하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비문과 "마지막 말"은 영혼에대한 관심을 갖게하
기에 충분하다. 피타고라스,소크라테스,프라톤,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대철학자들도
이견은 있었으나 하나같이 영혼관을 정립하려했다.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할때
"나는 단지 그대에게만 답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를 통해 온 인류에게 답한다."고
말한 라즈니쉬. 그의 철학과 영혼관은 깊어가는 이 사색의 계절에 인생.삶.죽음과
함께 사색의 주제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글은 부산의 한 지방신문에 실린 글로서. 그 내용이 우리 나이 또래의 사람들
에게 인생의 의미를 되씹어보도록 하는 시간을 주는 것 같아 실어보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