緣起를 확실히 이해하고 깨닫는다는 것은 개념지어진 모든 대상들의 虛構를 分解함으로서 實相을 여실히 보고 2분법사고 "나와 나아닌것"의 경계를 허물고 (法性圓融 無二相: 법의성품은 본래 둘이 아님)을 ,一卽一切,一切卽一인 不二思想을 증득하기 위함이요,이는 깨달은 만큼 행복한 삶을 살수 있고 깨달은 만큼 解脫할 수 있는 것이니 "지금 어떻세요?" 묻는다면 "행복합니다"가 스스럼 없이 튀어 나올 수 있는 至高至善의 삶을 살자는 것이 궁극의 목적-解脫에의 접근인 것이니 완벽한 이해후 수행함으로써 해탈(걸림없는 대자유)에 좀 더 가까이 닥아 서자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인식론-그 虛와 實: 모든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은 感覺기관이 대상을 접촉함으로 인식작용이 일어나는데 인식의 바탕에는 受<접촉할 때 일어나는 느낌>,想<이름 붙이는 표상작용,생각>,行<의도,행위>,識<의식,정신>마음의 총화가 동시에 작용함으로 인식은 수 상 행 식의 총체적 集合이다.예컨데 눈이 꽃을 볼 때 모양,색갈,크기등을 식별하고,아름다운 느낌,갖고싶은 의도등이 작용하여 마음작용을 형성한다.그 어떤 대상이라도 受想行識이 없으면 인식은 없다는 것이다.그렇다면 감각기관은 대상을 인식할 때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인식된 대상이나 감각기관은 온전할까?
眼根이 대상을 촉할 때 :6개의 인식기관중 눈은 전체 사물의 83%를 인식한다고 한다 눈을 통하여 인식되는 대상은 實體인가? 절대성이 있는가? 일정한 대상일지라도 보는 눈의 관점에따라 크기,모양,색갈등이 다를 수 있고 심하게는 錯視현상도 경험하는데 예를 들어보자 컵을 위에서 보면 원이요 측면에서 보면 직사각형이고 표면은 매끌없지만 확대경을 들이대면 울퉁불퉁하며 빛의 전면에서 보면 밝은 색이요 후면에선 어두운 색이다.그렇다면 컵의 실체란 무엇인가? 원형이냐 직사각형이냐? 매끄러우냐 울퉁불퉁하냐?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닐 수도 있다.그런데 우리는 컵을 상정할 때 불확실한 기역,또는 인식되여진 그 순간의 컵을 실체화한다.과연 그런 고정된 실체로서의 컵은 있는가? 보다싶히 조건에 따라 변한다. 내가 보고 있는 컵(피사체)은 인식되는 순간 본래의 컵이 아니다.,잡히는 순간,감지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 즉 찰라가 있었기에 그 만큼의 잔상을 본 것이다.
시간을 들여다보자 우리가 개념화한 시간은 관념일 뿐이다. 편의상 있는 것이다,過去,現在,未來가 존재하는 것 처럼 생각하지만 엄밀히 분석하면 妄想이다.시간을 區劃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오류에 빠진다. 過去가 존재한다면 現在를 정지 시키고 비집고 들어갈 空間이 있어야 논리적 타당성을 갖는 것이고 未來 또한 같은 논리다.그럼 現在란 무엇인가? 없다! 시간은 고정성을 갖을 수 없기 때문이다.만약 현재를 가정한다면 모든 것이 멈추어야 한다. 지구의 자전도 공전도 일딴 멈춤어야한다. 그게 가능한 애기인가? 시간은 단지 구태여 표현을 빌리자면 "흐름"인 것이요,느낌인 것이다. 그래서 금강경에 "過去心不可得,未來心不可得,現在心不可得" 과거는 지나간 것이니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없고, 현재는 찰라무상이니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다음 회차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