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장마 중에도 비가 잠시 멈추고 바람이 솔솔 불어 기분 좋은 날, 피서철이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잡은 도반들이 여럿 모였다.
집에서부터 절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준비하는 순간부터가 기도라고 한다. 그 간절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출발한 도반들이 고맙고 부처님의 가피가 충만하기를 빈다.
스님께서는 지난 달 죽전의 작은 절, 송광사 죽전 포교당으로 수행처를 옮기신 후 오늘 서울로 첫 나들이가 되셨다. 먼 곳에서 오셔서 좋은 법문을 들려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 저녁 공양은 이원구 법우가 보시했다.
철인 스님 법문 - 공덕을 회향(廻向)하자
이달 초순 일본 시고쿠 섬의 사찰 순례를 다녀왔다. 시고쿠 섬은 제주도의 네 배 정도 큰 섬인데 사찰이 88개가 있다. 일본은 잘 알다시피 불교를 믿는 나라다. 그들은 보통 1년에 한 번은 시고쿠의 사찰 순례를 한다. 한 번 떠나서 그 많은 사찰을 다 순례하는 이도 있고, 많은 사람들은 여러 차례 나눠서 시행한다. 중환자나 노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짚으며 걷고 또 걸어서 오랜 기간 동안 88개를 다 참배한다. 어떤 이들은 도중에 목숨을 잃는데 그러면 발견한 다른 순례자가 아무데나 묻어주고 고인의 이름이 적힌 지팡이를 비석삼아 꽂아둔다.
일본은 예전엔 화장 문화가 없었다. 시신은 모두 매장했고, 마땅한 장소가 없으면 그냥 쌓아뒀다. 그러다 백제 불교가 일본에 전파되면서, 불교의 화장인 다비 문화가 전해졌다. 일본은 그 화장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납골당 문화로 변화시켰다.
순례자가 고생고생 끝에 절에 도착하면 방명록에 이름과 주소를 적고, 참배했다는 확인 도장을 받는다. 그들 신도는 법당에 들어가는 게 금지돼있다. 부처님이 신성시됐기 때문에 신이 계신 곳에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당 문은 항상 굳게 잠겨있고 불상을 보려면 작은 구멍으로 들여다본다. 법당은 스님들만 출입하며, 아주 작다. 법당이 공개되는 건 아주 큰 법회가 열릴 때 뿐이다.
순례자들은 절 밖에서 노숙한다. 낮에는 작은 방에 30여 명씩 모여서 반야심경을 읽고 공부하고 기도한다. 사찰을 찾는 이는 하루에 3만 ~ 4만여 명이나 된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사찰은 크고 개방적이다.
그럼에도 사찰 순례자는 적다. 간다 해도 지역적으로 치우치거나 유명한 큰 사찰만 찾는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관이 뛰어나거나 훌륭한 사찰이 얼마든지 있다. 고루 찾아가는 게 좋겠다.
사찰 순례도 기도이고, 백일 기도, 7. 7기도 (49일 기도), 7일 기도 등 사찰에서는 여러 날에 걸쳐 기도를 하곤 한다. 이 기간 동안 특별한 발원(소원)을 하면서 불공을 드린다. 이런 기도의 시작을 ‘입재’라 하고 마지막을 ‘회향’이라고 한다.
기도에서는 입재보다 회향이 중요하다. 회향(廻向)은 끝난다는 뜻이 아니다. 거기서부터 돌아가서 기도로 얻은 나의 공덕을 남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다.
불교 용어 중 자주 쓰이는 말, 선근(善根)은 착한 것, 좋은 것의 뿌리라는 뜻이다. 나무는 뿌리를 심는다. 줄기나 잎을 심는 게 아니라 튼튼한 뿌리를 심어야 잘 자라고 열매를 맺고 꽃이 핀다.
불교를 믿고 수행하는 데도, 좋은 뿌리를 내려야 좋은 수행이 된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 건 선근을 심는 일이다. 꾸준히 기도하여 선근을 쌓을수록 좋은 열매를 맺고, 좋은 꽃이 핀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 건 그런 연유다.
마음 속에 선근을 심으면 功德이 쌓인다. 공덕이란, 선근이 잘 자랄 수 있는 능력이다. 나무가 자라는 데 필요한 적당한 물과 햇빛 등, 깨달음과 직결되는 요소들이다.
이런 공덕은 꾸준히 쌓는 게 가장 중요하다. 물과 햇빛이 항상 꾸준히 적당량 필요하듯 기도와 수행도 항상 계속돼야만 한다. 하다 멈추다 하지 말고 꾸준히 할 때 기도의 공덕으로 자비심과 지혜가 생겨난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라는 선근을 심으면서 공덕을 부지런히 쌓은 다음엔 남에게 반드시 회향해야한다. 회향은 기도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기도의 연속이다. 나의 공덕을 남에게 베푸는 것, 나눠주는 것이 진정한 회향이다. 自利利他, 나에게도 이롭고 남에게도 이롭게 하는 것이 회향이다. 기도를 통해 내가 부처님께 받은 지혜와 자비심을 나 혼자 갖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두루 나눠주고 심어주는 것이 회향이다. 그 회향이 기도의 궁극 목적이다.
회향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지면 세 가지로 나눈다. (회향 3처)
1. 보리 회향
보리란, 깨달음. 지혜라는 뜻이다. 기도는 할수록 지혜가 증장된다.
기도를 잘 할수록 서원이 생긴다. 원만한 삶이 이뤄진다.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다. 지혜와 자비는 불자들의 이상적인 삶이다. 그러나 복을 짓고 기도한다고 절에서 봉사를 하면서 가족을 무시라고 보살피지 않으면 지혜가 아니고, 보리 회향이 아니다. 기도는 적절히 해야 한다.
2. 중생(衆生) 회향
중생(모든 생명체)에게 내 공덕을 돌려주는 회향은 참으로 어렵다. 여러 보살 중에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을 하나도 남김없이 구제하겠다는 원대한 서원을 하셨지만 아직도 중생 구제는 끝내지 못했다.
중생을 돕겠다는 마음은 자비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자비심이 있어야 다른 이들에게 내 공덕을 나눠 주겠다는 원력(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스님들도 중생 구제가 최상의 공덕인데 절에서 책 읽고 공부하고 참선만 하는 게 중생 회향은 아니다. 일반인들 속에서 불법을 전하고 선근을 심어주고 인도하는 게 생활 불교이고, 중생을 구제하는 회향이다. 내가 지금 이 법문을 하는 것도 생활 속의 중생 회향이다. 이런 회향은 항상 꾸준히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3. 십회향
자기 공덕을 남에게 돌리는 과정에서 지켜야할 10가지 진리를 말한 것들이다. 화엄경 십회향품에 과거 불보살님들이 설한 10가지 회향법의 내용이 있다.
“일체 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생각을 떠난 회향이요,...중생을 평등하게 대하고, 선근을 평등하게 심어주고, ...” 등등. 중생을 대하는데 차별이 없이, 베푼다는 생각 없이 베풀라는 내용이다.
회향의 마지막인 십회향은 인생의 정점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평소부터 꾸준히 조금씩 나누다가 인생의 정점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생의 마지막에 “잘 살았다.”고 스스로 일생을 평가할 때 이뤄지는 진정한 회향이다. 그러니 어느 한 시점에서만 회향할 게 아니라 평생 조금씩 꾸준히 남에게 공덕을 회향하며 살자. 그러다 보면 회향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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