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의 얼굴이 안 보일수록 매력이 신비하게 느껴지고 호기심이 배가되는 법. 오래 동안 불편한 교통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신비감만 높여 준, 처녀지에 가까웠던 사찰이 고려시대에 지어진 춘천 청평사다.
그러나 몇 년 전 소형차만 다닐 수 있는 2차선 도로가 산허리를 끊어 조성된 후부터 비로소 그 절경을 드러내고 있다. 그 전까지는 소수의 사람만이 소양강을 배로 건너서 다시 오봉산을 넘어서 갔다.
게다가 춘천까지 전철이 개통된 일석이조의 혜택으로 선우회가 8일 찾아갔다.
비가 온다던 일기예보가 무색했다. 해는 아직도 수줍은 듯 거의 종일 구름 속에 깊이 숨었다가 아주 가끔, 몇 분 동안만 고개를 내밀어 우리들 얼굴을 훔쳐봤다. 15명 중 스님만 빼고 모두 지공선사들인데. 아직도 우리가 미남 미녀인가? (꿈도 야무지다고?)
해는 그냥 숨은 게 아니라 비구름을 꽁꽁 묶어두기까지 해서 날씨는 최적, 덥지도 않고 살랑살랑하는 바람이 적당히 시원했다.
상봉역에서 9시 15분발 전철을 타고, 나란히 마주보고 자리를 잡았다. 남득현이 건포도를 돌리고 맛있는 찐방도 돌아간다. 즐겁게 얘기 꽃이 피는 동안 어느새 남춘천역에 도착. 하차하여 버스를 기다린다. 노선버스 두 가지가 10분 간격. 이것도 전보다 배차간격이 반으로 짧아졌다. 출발점인 이곳에서부터 편안히 앉아서 가는데 승객이 없는 탓으로 예정보다 훨씬 짧은 30분 만에 소양감 댐에 도착했다.
여기서 여객선을 탔다. 잔잔한 강 위로 유유히 달리는 창 너머로 소양강처녀 노래를 상징하는 소양강처녀 동상이 강가에 보인다. 강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소양강과, 양 쪽의 숲까지 산과 물을 동시에 감상하며 순식간에 선착장에 도착, 자갈길을 걸어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공양부터 하기로 한다. 문막에서 김두경이 먼저 운전하고 와서 전통 곡차로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쌀알 같은 흰 색의 쥐똥나무 꽃이 아카시아보다 더 진한 향을 뿜는 그늘아래에서 춘천의 명물 닭갈비와 막국수, 감자전, 도토리묵, 산채비빔밥 등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을 듯하다. 오늘 공양은 김두경이 거하게 쐈다. 항상 보시를 잘하니 감사, 또 감사.
청평사는 소양강이 시작하는 댐과 오봉산이 만나는 식당촌부터 시작하여 30분 걸어간다. 가는 길은 볼거리들이 요소요소에 있어 지루하지 않다. 초입에 당나라의 평화공주와 상사뱀 동상이 계곡 바위 위에 보인다. 당나라 공주가 병에 걸려 청평사로 기도하러 왔는데 평소 짝사랑하던 평민 총각이 따라왔고 뱀이 되었다. 공주는 굴 속에서 기도했고 뱀은 결국 상사병으로 죽었다. 공주는 죽은 뱀을 잘 묻어주었다는 설화다. 다음 세상에선 꼭 해피엔딩 했을 거라 믿는다.
동상에서 100여 미터 앞에 공주가 기도했다는 작은 굴, 공주굴이 있고 굴 앞은 아담한 폭포다. 소나무 숲이 무성한 곳이라 九松폭포라고 하며, 물이 많은 땐 우렁찬 아홉 가지 소리를 낸다고 九聲폭포로도 불린다.
절은 넓고 아늑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입구 천왕문의 四天王은 보물 인데 너무 오래돼 파손될까 염려하여 다른 곳에 모셔놓아 아쉽게도 볼 수 없다.
절 뒤로 잠시 오르면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신 오층탑도 있으나 일부만 참배하고 왔다.
철인스님과, 그 절의 해설사가 들려주는 해설을 간간히 들으며 1천여 년 전 고려 시대에 건축된 청평사의 면모를 자세히 공부했다.
더 오래 머물고 싶지만 절 입구 주차장에서, 예약한 택시 3대와, 김두경의 차에 4팀으로 나눠 편승하고 4시경부터 춘천역으로 고고싱.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1시간 덜 걸렸다. 역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먼저 전철에 탑승하여 각자 귀가 길에 올랐다.
모두 무사하고 즐거운 하루였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