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신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
꽃샘바람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꽃을 하나 둘 귀엽게 피워낸 벚꽃과 개나리 진달래가 발걸음을 산뜻하게 한 13일 오후.
야외에서, 해외에서 불어온 꽃바람의 유혹을 받은 법우들이 많은 것 같다. 썰렁한 그들의 자리가 크게 보인다.
벚꽃 축제와 지난 10일의 동기 야유회 얘기로 한담도 나누고, 일찌감치 오붓하게 법회를 끝냈다.
6월에 대중교통으로 갈 성지 순례 장소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수원 봉녕사, 대전 여래사, 춘천 청평사, 여주 신륵사가 후보에 올랐지만 대중교통으로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곳이라 다음 달에 더 의논해서 결정하기로 했다.
철인 스님 법문은 우리가 어디에 마음을 쓰며 살아야하나?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하나?가 주제였다.
스님 법문 _ (마음은 ) “어디에 머물러야 할 것인가?”
우리들은 항상 머물 곳을 찾고 있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집을 구하기 위해 찾아다니고, 직장이 없는 이들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길거리를 떠도는 노숙자들은 매일 잠 잘 곳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떠돌아다닙니다. 이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활하는데 먹을 음식과 잠잘 곳의 해결은 최소한의 요구사항입니다. 어떤 이는 몸과 마음을 고층 아파트, 고급 빌라에 얽매이고 있는데 만약 그 집에 불이라도 나면 어쩌겠습니까. 또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찌 되겠습니까?
금강경에서는 부처님께서 色(물질), 聲(소리), 香(향기), 味(맛), 觸(촉감), 法(진리, 불법) 등 六塵(육진: 6가지 좋지 않은 것))의 세계에 머무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색이란 빛깔이 아니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 재물을 말합니다.
중생들은 대부분 재물에 집착합니다. 물론 재물은 중요합니다. 색을 버려야할 6진의 하나라고 본 것은 재물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지혜롭지 못한 욕심을 경계한 것입니다. 즉, 탐심, 욕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어디에선가 읽었는데 성인들에게 “가장 갖고 싶은 게 뭐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선뜻 차를 갖기를 원했습니다. 다른 많은 사람도 역시 차를 원했습니다. 다른 점은 차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 뿐입니다. 젊을수록 소형 국산차를, 나이 많을수록 지위에 걸맞는 대형차, 외제차를 원했답니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을수록 고가의 대형차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은 집착이고, 탐욕입니다.
자가용이 꼭 필요한 동시에 신분 과시의 수단이 된 겁니다.
요즘은 스님들도 대부분 차를 갖고 있습니다. 일반인들 보기에 스님이 왜 중형 대형차를 갖느냐고 의아해합니다만 스님들도 차는 필수품입니다. 하지만 고가의 대형차 외제차는 역시 사치요, 탐욕입니다.
꼭 필요한 것 이외에 마음을 두고 사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며, 욕심내고 욕심이 채워지지 않아 성내고 결국은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매일 돈만 쫓는데 돈에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돈은 여러 사람이 같이 가지는 것이고 흘러 왔다가 흘러 가버리는 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돈은 단지 사람들에게 벌고 잃는 걱정만을 안겨줄 뿐이지 안주하게 해 주지는 않습니다.
애정에도 안주하기는 어렵습니다. 모였다가 흩어지는 구름과 같은 애정은 세상살이 속의 애증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회에는 이혼, 유기 등의 고통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업에도 안주하기는 어렵습니다. 날마다 여기저기로 뛰어 다녀야 하고, 심지어 밥조차 집에서 먹지 못하니 처자와도 흩어져서 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학문에 안주하고 있는데, 학문이란 좋은 것이지만 공부벌레가 되어버린 사람도 있으니 이도 그리 좋다고는 못합니다.
위에서 말한 모든 것들은 일반사람들이 마음 자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옛말에 여법(如法: 불법에 맞는 것, 진리)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법다운 자리, 올바른 자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온 정신을 먹고 마시고 마는 물질생활에 쏟는 것으로 결국은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게 되고, 같은 부류 끼리 어울려서 온갖 향락만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결국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게 됩니다.
산과 물, 자연에 빠져서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산과 물은 대자연의 것으로 우리들이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귀공명만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명예는 한밤의 꿈과도 같고, 부귀는 9월의 서리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연연해 할 것이 못 됩니다.
그럼 우리 마음은 도대체 어느 자리에 머물러야 할까요? 화엄경에 “상락유화인욕법, 안주자비희사중(常樂柔和忍辱法, 安住慈悲喜捨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부드러움과 인욕(욕되고 힘 든 것을 잘 참음)을 항상 즐겨 행하면서, 자비 희사를 생활화하는 것으로써 몸과 마음이 머무르는 편안한 자리로 한다면, 다른 중생들에게 사랑하고 자비하는 마음으로 베풀며 산다면 이곳이 바로 우리가 안주할 자리를 찾은 것입니다.
6바라밀에 나오는 두 번째 바라밀인 인욕과 자비심, 항상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남에게 항상 베풀며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이자 불성이 겉으로 드러난 표현입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