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에 귀의합니다.
12일 12명의 나들이.
양재역에서 만난 9명과 현지 2명. 병점역에서 1명이 만나 가을의 절정에서 마주한 화성 용주사는 정조대왕의 효심의 표현을 극대화한 孝行 사찰이다.
11살 어린 소년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가 28세 나이로 억울하게 뒤주에 8일간 갇혔다가 숨지는 모습을 본 무너지는 가슴을 절절히 느끼게 했다. 저승길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 것이라 믿고 가슴 아파하던 세자는 보위에 오른 후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부모님 은혜 10가지를 설한 부처님 말씀)을 듣고 사도세자의 능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용주사를 세우고 왕생극락을 빌었다.
절 입구 좌우에 부모은중경을 새긴 돌들이 사열하고,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정조와 왕비 등 4명의 위패가 있는 호성전, 그 앞에 부모은중경을 새긴 비석들이 그 흔적이다.
절 식당에서 맛있는 비빔밥과 가지고 온 후식으로 점심 공양을 마치고 효행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안에 있는 정조 관련 유물들은 모두 경기도 문화재인데 정조의 행차도, 설법하는 아미타불 모습의 탱화, 김홍도가 그렸다는 <삼세여래 후불 탱화>, 세계에서 하나 뿐인,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는 부처님 목불 좌상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가 박물관 안에 들어섰을 때 마침 어느 불교문화연구가 거사님이 오셔서 유물들을 하나하나 해석하기 시작하셨는데 이분은 그냥 해설사가 아니라 전문가로서, 한 달에 한번 오시는데 마침 우리가 그를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 그래서 전문서적에나 나오는 재미있는 일화들도 함께 들은 귀중한 기회였다.
그 분 말씀이 젖먹이는 부처님은 정조의 지시로 만들어진 불상인데, “부처님은 중생의 어머니이며, 모든 어머니는 부처다.”라는 의미라고 했다.
용주사는 이런저런 효행의 흔적과 기도의 힘 덕분에 천도재나 49재를 지내면 고인이 왕생극락 간다는 설이 있어서 외지에서도 많이 와서 재를 지낸다고 그분은 들려주었다.
옥으로 만든 작은 불상 1천 분이 모셔진 千佛殿 밖 벽에는 중국 선종의 맥을 이어온 6조 혜능대사의 일대기를 그린 벽화로 덮였는데 박미자가 잘 설명해주었다. 혜능대사는 가난한 집에서 홀어머니와 살던 일자무식 나무꾼이었다. 그런 그가 중국 불교 禪宗의 맥을 이어 6조대사로 인증 받은 후 조계산에서 수행했다. 우리나라 조계종은 그 혜능대사의 가르침을 근본을 삼으면서 조계산의 이름을 따서 조계종이라 칭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불교와는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큰 스님이다. 다른 절에는 이런 벽화가 없는데 유독 용주사에만 이런 벽화가 그려진 것도 용주사의 특징인 것 같다.
단풍은 졌지만 산사의 정취가 고즈넉한 경내를 사박사박 걸어 나와 근처 융건릉을 참배했다. 융릉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능이고, 거기서 9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정조와 효의왕후의 능인 건릉이 널찍한 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애들과 함께 즐거운 소풍을 나왔는데 정조의 효심을 느끼는지 아닌지 모르게 가을의 정취를 즐기고 있었다.
대중교통편으로 간 순례에서 오가는 차 안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기회였다.
“부처님은 중생의 어머니이며, 모든 어머니는 부처다.”라는 말이 머리에 오래도록 남는다.
불편한 교통에도 불평하지 않고 즐겁게 잘 다녀온 도반들, 기금을 내준 도반들 모두에 감사.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