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신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지난 10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라 이달 법문은 부처님의 탄생과 생애를 주제로 하셨다.
부처님 생애를 8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그 그림을 <팔상도> 또는<팔상정도>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큰 전통사찰에 팔상전이나 영산전에 벽화로 그려 있다. 철인스님은 그 <팔상정도>의 순서대로 설명하셨다.
차분하신 음성으로 상세하고도 재미있는 옛날 얘기처럼 설명하셔서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한 편의 다큐 영화가 보이는 듯 했다.
며칠 전 한 동문이 “석가모니와 부처님은 다른 분이냐 같은 분이냐, 무슨 뜻이냐?”고 질문을 해서 이 기회에 잠깐 설명한다. ‘석가모니’는 ‘석가 종족 중에서 깨달으신 분’이란 뜻이고 ‘부처님’은 깨달은 성자‘라는 의미며 모두 같은 분이다. 이 외에 부처님을 칭하는 이름은 ’여래‘’명행족‘ ’세간해‘ ’무상사‘ ’불세존‘을 포함해 10가지가 있다.
기독교에서 예수를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여러 이름으로 칭하는 것처럼...
철인스님 법문- 부처님의 탄생과 생애
부처님의 탄생과 그 생애를 알아보는 건 곧 불교의 철학을 알아보는 일이다. 생애를 알면 불교가 무엇인지, 불법의 핵심이 무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佛紀 2555년이다. 이는 탄생하신 해부터 따지지 않고 열반하신 해부터 따진 연호다.
1956년에 스리랑카와 동남아 불교국가들은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에서 열반(입멸)하신 해를 기준으로 2500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하였다. 이때부터 그 기준을 모든 불교국가 및 U.N(국제연합)에서 통일한 불기(佛紀)로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실제 부처님은 기원전 624년 전 탄생했다고 믿어진다.
古代에 서북인도의 펀잡 지방에 침입한 아리안 족은 서서히 동남으로 이주하여 인더스 강과 갠지스 강 일대에 정착했고, 오랜 세월 동안 원주민과 혼혈을 거듭하면서 피부색에 따라 계급을 정하는 베다(카스트) 문화를 형성했다. 인도에는 검은 피부의 인종만 있는 걸로 알지만 실상은 백인의 지배로 시작됐다. 카스트는 브라만(왕족 귀족) 크샤트리아 (평민) 바이샤(천민)으로 백인이 우위에, 검은 인종이 하위 계층에 속했다.
백인들은 브라만으로 권력을 잡고 원주민들을 지배했지만 갠지스 강 유역은 땅이 비옥하여 농업이 발달하고 상업도 번성하여 평민이나 천민들도 富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브라만 계급의 권력은 富裕한 하위 계층에 밀려 세월이 흐를수록 점차 형식적인 것으로 약화되고, 계급 차별이 없이 평등하게 변해갔다.
토착부족이나 혼혈화된 새로운 부족의 지위도 향상되었고, 이에 따라 자유로운 사상을 품은 선인들과 사상가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특히 갠지스 강 중심으로 많은 사상가들이 배출되었다. 그들은 불교와 비슷한 윤회 사상이나 인과율, 계급 차별 없는 평등사상을 믿었고, 이런 시대적 배경 하에 부처님이 석가 족의 왕자로 탄생하셨다.
부처님의 탄생을 8상정도 순서로 말하겠다. 절에서 새벽 예불을 시작할 때 15분간 종을 치면서 읊는 종송(鐘頌)으로 팔상정도를 염송한다. 팔상정도는 단순한 탄생설화가 아니라 불교의 모든 철학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1) 도솔래의상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
도솔천에서 사바세계로 오시기 위해 기다리시던 부처님이 흰 코끼리를 타고 석가 족 정반왕의 부인인 마야 왕비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있는 그림이다.
2)비람강생상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는 장면)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신 그림. 산달이 되어 마야부인이 친정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 동산에서 부처님을 낳으셨다. 탄생일이 음력 4월 8일. 탄생하실 때 9마리의 용이 물을 뿜어 아기를 목욕시켰다고 한다. 아기 부처는 탄생하시자마자 일곱 발자국을 걷고 오른 손은 하늘을, 왼 손은 땅을 가리키며 “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는 것은 모든 중생이 6도를 윤회한다는 것에서 부처님은 벗어나신 분이라는 뜻을 상징하여 7이란 수를 도입했다.
“천상천하...” 라는 말씀 내용은 이 세상에 나(부처님)혼자 귀하다는 뜻이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 나아가서는 모든 생명 있는 존재는 무엇이나 각자가 다 평등하게 존귀하다.”는 것. 결국 이 두 가지가 나중에 불교의 기본 가르침이 된다.
3)사문유관상 (四門밖에 나가 관찰하는 장면 )
풍족하고 부족한 것 없이 왕자로 살던 부처님은 성장한 후 어느 날 성 밖으로 나가 우연히 병든 사람, 늙은 사람, 죽은 사람을 보게 된다. 그 모습들은 한 번도 본 일 없는 인간의 고통이라 큰 충격을 받으신다. 그리고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인생무상을 절감하고 그것들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출가를 결심한다.
4)유성출가상(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
출가를 바라는 부처님의 심중을 눈치 챈 정반왕은 출가를 막고자 서둘러 결혼을 시킨다. 그리고 첫 아들이 태어나는데 부처님은 “라훌라(장애물).”라고 탄식하셨다. 출가를 막는 아이라는 뜻. 그러나 결국 29세에 머리카락을 자르시고 사냥꾼의 헌 옷과 자신의 비단도포를 바꾸어 입고 몰래 성벽을 넘어 출가하셨다.
5)설산수도상 (설산에서 수도하는 장면)
출가하신 부처님은 수행을 위해 당시 잘 알려진 수도자들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한계를 느끼시고 혼자 깨닫기로 결심하시고 부다가야의 산으로 들어가시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수행에 들어가셨다.
부처님은 하루 한 끼만 조금 드시고 가부좌로 명상하시는 수행법을 택하셨다. 나중에 부처님 곁에는 5명의 수행자가 함께 했다.
그러나 현재 남방 불교국가의 수행자들의 고행은 훨씬 더 심하다.
두 팔을 항상 수직으로 들고 있거나, 온 몸을 가시나무로 둘러서 스스로 잠을 못 자게 만들면서 참선하기도 한다.
그렇게 명상으로 수행하시는 동안 몸은 마르고 쇠약해 지셔서 병이 나시고 어느 날 한 여인이 우유를 대접해, 그 우유를 마신 후 회복하셨다. 함께 수행하던 5명은 부처님이 여자를 가까이 했다며 부처님 곁을 떠난다.
6)수하항마상 (보리수 아래서 마귀를 항복시키는 장면)
고행을 하시며 생로병사의 고통을 벗어나는 길을 찾으시던 부처님이 깨달으실 무렵, 마귀가 깨달음을 방해하며 온갖 위협과 유혹을 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온갖 장애를 물리치며 마귀를 항복시킨다. 그리고 수행 6년 후 음력 12월 8일 새벽 마침내 까달음에 이르셨다.
7)녹야전법상 (녹야원에서 첫 설법)
부처님께서 득도 후 최초로 녹야원에서 설법을 하셨다. 이때는 부처님을 떠났던 교진여 등 5명이 참석했다. 이들 5명은 최초의 아라한(중생으로서 깨달음을 얻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 최초의 비구가 된다.
최초로 하신 설법이 ‘사성제’ 내용이다. 사성제란 고집멸도(苦集滅道). 집착을 버리면 고통이 없어지고, 도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후 부처님은 80세까지 45년간 여러 곳에서 쉼 없이 설법을 하셨다. 나중에 부처님의 아들 라훌라와 어머니, 부인 모두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 비구 비구니가 되었다. 라훌라는 수행을 열심히 하여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석가 족은 이후 다른 부족의 침공으로 멸망했으며, 지금 네팔에 약간 남아있다.
8)쌍림열반상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드시는 장면)
80세 때 사라쌍수 나무 아래에서 입멸하신 모습이다.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마지막 설법을 마치시고 열반에 드셨다. 둘러싼 제자들이 근심에 싸여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 저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며 애통해 하자 부처님은 ”자등명 법등명 자귀의 법귀의 하라.“고 하셨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며, 자기 자신에 의지하고, 불법에 의지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을 찾고, 불성과 불법에 의지하라는 유언이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