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신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어제도 변함없이 따사로운 미소로 우리를 기다리셨다.
과연 우리들은 마음속에 얼마나 불심을 담고 사는지.
예정대로라면 5월 14일이 사찰 순례 날이지만 많은 회원들의 여건을 감안해서 6월 11일(금)로 연기했다. 이번에도 차를 대절하여 갈 예정이며, 16회 동기들은 누구나 일체 부담 없이 참가할 것을 환영한다.
지금부터 달력에 표해놓고 빠짐없이 참가하여 행복한 날을 만들기를!!!
묘적 스님 법문- 49재, 천도재란 ?
법정 스님의 49재가 불일암과 길싱사에서 열린다는 언론 보도가 나간 후 내 주변에서 불자들까지 그 재의 의미를 전혀 모른 채 그저 누가 죽으면 절에서 49일간 재를 지내는 게 도리라는 정도로만 아는 데 놀랐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의미를 설명하겠다.
현재 비구(남자 스님)이 지켜야할 계율은 250가지다. (비구니, 여자스님)의 계는 349가지). 이 많은 계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으면 대답이 쉽지 않다. 그래서 부처님 시대에는 한 달에 두 번 ‘포살법회’라는 것을 열고 스님들이 그 계율을 모두 외우고 답하게 하셨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법회에는 신도들도 참여했고, 나중엔 신도들이 그날엔 스님들께 공양(식사) 대접을 했다. 그 공양 습관이 더 발전하여 포살법회 날이 아니라도 일정한 날을 정해서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게 됐다. 이 일을 齋(재)라 한다. 이 재가 요즘 49재와 천도재의 기원이다.
재는 죽은 날에 지내는 祭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불교에는 기본적으로 정해놓고 공양 올리는 날(재일)이 있고, 가족이 세상을 떠난 날부터 49일간 극락 가기를 빌어주는 49재와, 세상 떠난 지 오래 된 조상이나 형제들의 극락왕생을, 원하는 날을 잡아서 지내주는 천도재가 있다.
불자들이 주관해서 지내는 건 49재와 천도재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숨을 거두는 순간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서 49일간 유족 주변에 떠돈다고 한다. 고인의 영혼을 靈駕(영가)라고 부른다. 영가는 죽은 날부터 49일간 7일째마다 일곱 번 염라대왕 앞에서 사는 동안 지은 선행과 악행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 염라대왕 앞 좌우에는 十王(10명의 대왕)이 도열해있다. 이 분들은 법원의 배심원 역할이다.
(절에서 ‘명부전’ 또는 ‘지장전’이란 전각에서 주로 지내는데 그곳에 지장보살과 十王이 계시다.)
이 심판일마다 재를 지내서 영가를 변론하여 악업을 용서해주기 빌고, 선행을 들춰서 극락 가게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게 49재다.
사망 49일 째 염라대왕은 그간의 변론과 시왕들의 의견 등을 종합하여 판결을 내리고 판결에 따라 영가는 극락 또는 지옥으로 간다고 한다.
그러나 이승에 미련이 많은 영가들은 간혹 극락이나 지옥으로 못 가고 이 세상 허공에 계속 남는데 불교에서는 ‘중음신’이라 하고, 일반인은 귀신이라고 부른다.
극락이란 윤회(생과 사를 반복하는 것)가 없고 항상 즐겁고 근심 걱정이 없는 영원한 세상이다. 누구나 극락 가기를 원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아미타불 부처님은 극락을 만들어놓고, “누구든지 임종할 때 내 이름을 세 번 부르든지, 곁의 사람이 대신 세 번 불러서 임종하는 이 귀에 들리게 하면 내가 그를 극락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셨다.
이건 참 쉬워 보이지만 절대 쉽지 않다. 숨이 끊기는 순간은 무의식 상태라서 아미타불 이름을 부를 생각이 나지 않고, 옆 사람도 숨이 끊기는 사람을 붙들고 울고 불고 하는 게 대부분이다. 본인이 평생동안 “나무 아미타불”을 무수히 불러서 습관이 된 상태라야 숨지는 순간에도 무의식 상태로 그 이름을 세 번 부를 수 있다.
그래서 나이 든 불자들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슨 일이 생기면 “나무 아미타불”하고 부르곤 한다. 그렇지만 아미타불이 아니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보살, 예를 들면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 등의 이름을 습관적으로 꾸준히 불러도 된다.
임종시 세 번 부르기 어려우므로 우리는 평소 관세음보살에게 열심히 기도한다. 법회 때도 전국 대부분 사찰에서는 관세음보살 이름을 수없이 부른다. 관세음보살 머리의 화관 앞에는 아미타불 모습이 새겨있다. 관세음이란 뜻은 세상 모든 중생들의 소리를 千手千眼으로 듣고, 그 중 고통스런 신음 소리가 들리면 천개의 손으로 일일이 쓰다듬고 구해주는 보살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결국은 고통과 죄를 다 씻어내서 아미타불이 계신 극락으로 보내주신다고 한다.
음식을 차려놓고 재를 지내는 재는 영가가 극락 가기를 빌어주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지내는 사람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다. 재를 지내는 공덕은 10분의 3은 영가에게, 10분의 7은 지내는 유족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49재를 지내고 안 지내는 건 불자들의 자유 선택이다. 그러나 10분의 7이라는 공(복)을 받기 위해 지낸다면 그건 祈福이다. 기복이 목적이면 안 된다.
천도재는 49재와 의식은 똑 같고, 혹 극락에 머물지 못할까봐 극락으로 薦度(천도)해달라는 뜻으로 유족이 원하는 날을 정해서 지내는 것 만 다르다.
49재든 천도재든 의식의 처음은 관욕식(목욕 의식)으로 시작한다. 영가를 목욕시켜 깨끗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관욕은 넓은 의미에서 재를 지내는 나 자신, 유족의 마음도 동시에 씻자는 것이다. 영가만 천도하고 내 마음은 변치 않고 악업을 계속 지으면 천도재나 49재는 의미가 없다. 그리고 기복에 치우쳐서도 안 된다. 고인을 극락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해주자는 순수한 마음과, 나도 마음을 깨끗이 씻고, 더 죄를 짓지 말자는 결심을 하면서 지내는 것이 진정한 재의 목적이다.
복은 달라고 빌면 주어지는 게 아니라, 불법을 통해 바르게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꿀 때 저절로 복은 따라온다. 불교는 신에게 복을 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내 마음을 스스로 닦아서 행동을 복받는 행동으로 바꾸고 복을 스스로 짓는 종교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