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연중 가장 찬란하고 빛나는 달 5월의 한 가운데. 행사도 가장 많고 모두 바쁘기 그지없는 시기지만 부슬부슬 단비가 내리는 중에 그래도 12명이 돈독한 신심으로 모였다.
연등이 울긋불긋 화려하게 달린 법당에서 스님은 지난 달 108배에 이어 보다 높은 단계의 수행으로 들어가, 참선을 지도하셨다. 앞으로는 봄가을에 각각 108배와 참선을 하여 교리 배우기 중심에서 수행 중심으로 업그레이드 하겠다고 하셨다.
참석자 : 김군승 박광선 박상규 박영섭 송인식 황정환 류진희 박 정애 이향숙 정채영 현정인 홍사순
스님 법문 - 참선의 이론과 실기
불교는 다른 종교보다도 더 실천을 중시한다. 하나라도 아는 대로 실천하기를 강조하는 종교다.
불교 종파를 禪宗 敎宗으로 크게 나누는데 교종은 글자 그대로 법문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것, 선종은 참선을 통해 나 혼자 깨달음을 얻자는 것이다.
지금 일반 사찰에서나 내가 여기 와서 하는 법회는 선종과 교종의 결합한 형태다.
우리나라가 중국에서 들여와서 현재에도 큰 스님들이 하시는 참선법은 看話禪이다. 간화선은 글자 그대로하면 말을 본다는 뜻인데. 말을 話頭라고 한다. 그러니까 참선하면서 화두 (어떤 주제)를 꾸준히 생각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는 게 간화선이다.
간화선 이전에는 조사선이 있었다. 祖師禪은 인도에서 달마대사가 중국에 건너와서 불교를 포교할 때 제창한 참선법이다. 祖師란 말은 깨달은 스승이며. 조사선은 달마대사라는 큰 스님이 시작한 참선법이란 뜻. 조사선은 달마대사의 제자들을 통해 오래 동안 이어져 왔다.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섭존자에게 연꽃을 한 송이 보이실 때 가섭이 그 의미를 깨닫고 미소 지었다는 그 염화미소처럼 혼자 참선하는 가운데 스스로 깨닫는 방식이다. 조사선은 불법의 실천이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깨달은 동기가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 어떤 스님은 스승의 “억”하는 고함에 깨달았고, 어떤 스님은 일상적 일을 하다가 순간적으로 깨닫기도 했다.
후세에 와서 깨달은 동기를 어느 스님이 기록한 책을 보면 모두 1980가지였다고 한다. 이 1980가지를 화두라고 해서 그 후 스님들이 그중 마음에 드는 한 가지를 골라 참선했는데 그게 화두였고 간화선이 발생한 동기다.
간화선 역시 실천에는 약하다. 우리나라에도 스님들이 선방에서 두문불출하시면서 1주일, 한 달, 6년, 10년... 식으로 스스로 기간을 정해 한 가지 화두를 놓고 참선만 하시는 분이 많다. 그 중 깨달으신 큰 스님들이 많은데 우리가 만나지 못할 뿐이다.
간화선은 현재 중국 일본 우리나라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스님들은 “一日不作 一日不食(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을 먹지 않는다)”라고 스님들도 노동하는 것을 수행의 원칙으로 한다. 절에서 스님들이 스스로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한다. 이런 수행을 방식을 북방불교라고 한다. 스님들만 참선하고, 정해진 시간, 공간, 형식 속에서만 선을 할 수 있다는 게 간화선의 약점이다.
그러나 참선의 기본은 <생각>이다. 생각을 어떻게 갖느냐가 중요하다. 오래 동안 한다고 깨닫는 게 아니다. 얼마나 생각을 집중하느냐가 관건이다. 정신을 온통 집중한 상태에서 자기 마음을 보는 것이다. 내 마음 상태를 깊이 관조하는 것이다. 산 속이나 방에 들어앉아 벽만 바라보며 오래 있다고 깨달아지지 않는다.
무슨 일을 어디서 하든지 한 생각에 골몰하면 어느 순간 깨달을 수 있다. 화두가 아니라 어떤 염불만 꾸준히 오래 해도 깨달을 수 있고, 스님이 아니라 일반인도 깨달을 수 있다.
간화선의 모순에 대한 대안으로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등 동남아 지역 스님은 다르다. 남방은 더운 지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움직이기를 싫어한다. 스님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매일 아침 밥그릇을 들고 마을을 돌며 주민들에게 음식을 얻어먹는다. 또 한 곳에 앉아서 화두를 들고 간화선을 하지 않는다. 농사지다가 벌레를 죽이는 건 교리에서 금한 살생이란 생각으로 농사도 짓지 않는다. 이런 수행 방식을 남방불교라고 부른다. 남방불교의 참선은 앉아서 면벽참선만 하는 게 아니고, 行住坐臥(가거나 머무르거나 앉거나 눕거나, 즉 일상생활의 모든 일)간에 그저 한 생각만 꾸준히 하여 깨달음을 얻자는 것이다. 이런 것을 ‘위빠사나‘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위빠사나 수행법이 도입돼 참여자가 많아지고 있다.
간화선은 빨리 깨닫자는 것, 위빠사나는 천천히 느긋하게 깨닫자는 것. 비유하면, 간화선은 부산 가는데 KTX를 타고 가는 것이고, 위빠사나는 버스로 천천히 가자는 것이다. 어느 것이든 시간 차는 있지만 목적지에 닿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간화선은 정신을 집중하는 思惟수행이며, 삼매에 빠지거나 定(마음에 혼란이 없고 고요한 상태)에 들어가서 깨닫는 것이며, 위빠사나는 앉거나 걸으면서, 때로는 길을 가면서도 한 가지 생각에 골몰하면 깨달을 수 있다는 참선 방법이다.
간화선을 실제로 하자면, 우선 화두는 내가 해결할 문제로 정한다. 스님들이 가장 많이 붙잡는 화두는 “이 뭐꼬?”이다. 간화선을 하기 전에 大信心, 大憤心 大疑心 이 세 가지가 전제조건이다.
대신심은, 내가 이미 부처임을 굳게 믿는 마음이다. 모든 생명체는 佛性을 가진 존재, 즉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으나 그걸 깨닫지 못할 뿐인 존재임을 믿어야한다.
대분심은, 내가 부처인데 왜 나는 부처로 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지에 대해 분해하고 화를 내는 마음이다. 내가 세속에 시달려서 범부로 사는데 대해 분해하고 화를 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대의심은, 당면한 내 문제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다. 왜 나는 부처가 못 되는가? 왜 나는 이렇게 화를 내고 욕심내고 살까? 나는 본래는 부처인데 왜 지금 이렇게 살까? 라고 깊이 원인을 의심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마음이 있을 때 선을 하겠다는 강한 동기가 생긴다. 그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참선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참선은 스님들만의 수행법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마조스님 시대에 方거사라는 남자 신도가 참선수행으로 깨달았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 불교도 스님들만이 아니라 재가불자 신도들 힘으로 발전돼 왔다.
그러니 여러 분 같은 신도라고해서 참선 수행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집에서나 나가서나 하루 몇 시간, 몇 분의 짧은 시간만 내어서라도 자신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 한 가지의 생각만 붙잡고 꾸준히 지속하면 언젠가는 깨달을 수 있다.
앉아서 할 때도 꼭 일정한 자세로 지속하지 않고 편히 앉아서 해도 좋다. 앞서 강조했듯이 중요한 건 자세나 시간이 아니라 얼마나 생각을 집중하느냐가 성패를 결정한다.
생활 속에서 참선을 생활화하면 마음이 삼매에 들어 고요해지고 점차 불성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제부터는 일단 간화선의 기본법을 실습해보자.
◆준비 운동: 오래 앉는 것에 대비하여 다리를 푸는 운동.
두 다리를 앞으로 쭈욱 뻗는다. 두 손으로 발목을 잡고 몸을 최대한 굽혀 가슴이 다리에 닿게 한다.
두 다리의 발바닥을 붙인 채 무릎을 굽힌다. 발목을 두 손으로 잡고 몸을 굽혀 가슴을 다리에 댄다.
한 쪽 다리를 반대편 다리에 올리고 위의 다리에서 발목을 좌우로 각각 8회씩 돌린다. 다리를 바꾸어 똑같이 한다.
한쪽 다리 무릎을 굽혀서 반대편 무릎 옆에 붙인 다음, 두 손은 허리에 대고 몸을 무릎 세운 다리 편으로 힘껏 튼다. 다리를 바꾸어 같은 방법으로 한다.
◆자세 : 오른 편 다리를 굽히고 왼 편 다리를 오른 편 다리 위에 올려 굽힌다. 이것을 반가부좌라 한다. 손은 무엇을 가볍게 잡으려는 듯 둥글게 굽히되 오른 손은 아래에, 왼 손은 엄지가 오른 손 엄지 위에 오게 해서 두 손으로 원을 만든다. 원의 중심이 배꼽 아래 3cm 단전에 오게 한다.
두 눈은 코끝을 내려다본다.
◆호흡법:
간화선에서는 數式觀, 否定觀, 佛相觀의 세 가지로 정신을 집중하고 자기 내면을 본다. 가장 흔한 게 수식관이다. 숫자를 세면서 한참 반복하면 잡념이 없어지고 마음이 맑아지며 삼매경에 들어가게 된다.
부정관은 여자 생각 등 나쁜 생각들을 모두 부정하고 부정해가면서 남은 것을 발견하는 방법. 불상관은 아무 생각없이 무심히 부처님 모습만 쳐다보는 것이다.
오늘은 수식관을 해본다.
천천히 20까지 속으로 숫자를 세며 숨을 쉬는데 숨 쉴 때 배가 앞으로 불룩하게 나와야한다. 숨을 내쉴 때도 천천히 배를 들이밀면서 20에서 거꾸로 센다. 마시는 시간보다 내쉬는 시간이 1.5배가 되게 길어야 한다.
이렇게 하기를 반복하면서 오직 숫자 세기에만 정신을 집중한다. 스님들은 보통 50분간 앉아서 한 다음 서서 10분간 걸으면서 다리의 피로를 푼다. 이를 합친 1시간이 기본이다. 이렇게 앉아서 하는 좌선과 걷기(행선이라고 함)를 합쳐서 반복한다.
걸을 때도 천천히 발꿈치부터 내딛으며, 역시 숫자를 세고 숫자세기에 정신을 집중한다.
오늘은 처음이므로 오래 하면 다리가 저릴 것 같아 10분 좌선하고 3분 행선한다.
여기까지가 간화선이다.
위빠사나는 수를 세는데 집중하지 않고 자세도 그냥 편하게 앉으며 앉거나 걸으면서 숫자 대신 지금 자기 몸 상태에만 정신을 집중한다. 앉아있는 지금 내 몸이 느끼는 감각, 예컨대 다리가 저리다. 바닥이 차구나.. 등등. 이렇게 오래하다 보면 깨달음으로 간다는 방식이다.
오늘 배운 대로 평상시에 시간 나는 한 꾸준히 실천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