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부터 내내 27년만의 혹한과 폭설이 전국을 휩쓸었건만 7일 오후부터 날씨가 갑자기 평년기온으로 올라갔다.
집을 나서니 바람이 없고 온난한 편이다.
청계산 입구 전철역에서 영숙이를 만나 정자로 가니 조금 후 미자가 온다. 더 올 사람이 없다고 해서 셋이 오르기로 했다.
초입부터 빙판이라 아이젠을 신고 조심조심 가기로 했다. 입구 쪽엔 햇살이 좀 드는 곳이라 눈이 푸석푸석하지만 그 눈 밑엔 단단한 얼음이 숨어 조심 조심. 돌계단은 숨어서 살짝 머리 꼭대기만 보여주고 있지만 위험하진 않다. 좀 더 오르니 완전 백설의 세상이다. 걷기도 안전하고 하얀 세상이 마음도 깨끗하게 바꿔준다.
원터골 약수를 지난 후엔 등산로 길도 흙이 안 묻은 채 눈이 아주 깨끗해 먹어도 될 정도.
우리 셋은 이날 백설 가운데 핀 설중매 세 송이였다. 매란국죽 4군자 중 제일 먼저 추위를 뚫고 피는 게 매화인데 우린 더 먼저 청계산에 피어서 옥녀에게 신년하례 인사를 올린 셈이다. 내주엔 더 많은 꽃이 피겠지. 숙자 인자 영경 영애 수인 행선 등 이름도 예쁜....
거기, 우리가 할미꽃인데 감히 매화라고 우긴다고 웃는 너, “너 이름 뭐니?”(양희은 버전)
우리 당원들 마음은 죽을 때까지 계절과 무관하게 전천후로 每 火요일에 옥녀봉에 피는 화사하고 고운 梅花로 살 거야. 돈 안 드는 꿈이잖아.
내가 꽃이라 부르면 꽃이지.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앉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럴 때 수인이 와서 보라색 하늘색 진분홍 꽃 사진을 찍어야하는데 아쉽다.
수월하게 정상에 다다르니 어묵장사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어묵을 팔고 있다. 우리도 하나씩 먹었다. 어묵 컵라면 커피 막걸리까지 파는데 여기까지 어떻게 다 지고 왔을까.
바람 한 점 없이 완연한 봄 날씨다.
“매화당이 7년간 매주 오는데 어쩜 날씨가 아주 춥거나 덥거나 눈비가 많이 온 날이 없지?”
우리들 이 말에 아저씨가 말을 받는다.
“좋은 일을 많이 하셨나봅니다.”
“그럼요. 모두 착하거든요.” 영숙이 말.
앞으로도 우리 梅花黨은 쭈욱 착하게 지내서 복 받고 대박나자.
아저씨도 대박나시라고 덕담하고 잠시 휴식한 후 전보다 빨리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와서 먹은 추어탕은 왜 그리 맛있는지.
밥 먹으며 미자가 제안한다.
“얘들아. 우리가 85세까지는 올 수 있을 텐데 서로 돌아가며 회장을 일 년씩 하자. 그게 재밌을 거야.”
영숙이와 난 이구동성으로 펄쩍 뛰었다.
“그거 재미없어. 그리고 어떻게 그 나이까지 올 수 있겠어?”
결국 미자가 계속 당수직을 유지하기로 묵시적으로 결정했다.
그 나이까지 함께 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제발 그렇게 되기를 지금부터 빌어볼까.
식당을 나서니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오늘 밤부터 다시 강추위라지?
역시 우리 매화당이 가는 때는 날씨가 알아 모시는구나.
그런데 , 나 ....자신 없는 걸.배달된 나이 문걸어 잠그고 `안받겠노라'했지만 `누구 맘대로....!'
정초부터 몸이 아픈건지 마음이 아픈건지 시원찮은 상태가 정신을 못차리겠네.
건강한 친구들 모습에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