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조금은 쓸쓸해지지만 우리 매화당이 맞이하는 연말은 1박2일의 여행이 있어 즐겁고 행복하다.
머리에 서리가 점점 많이 내리는 게 조금도 서럽지 않은 건 함께 한 해를 보내고, 또 함께 새해를 희망으로 맞이하는 친구들의 진한 우정 덕분이다.
올해도 2012년을 보내는 아쉬움도 달래고, 매화당의 일곱 살을 기념할 겸 3일, 4일 1박2일로 문막 오크밸리 리조트에 다녀왔다.
3일 오후, 베테랑 친구들이 운전하는 3대의 차에 분승하여 각각 분당, 사당역, 올림픽공원역에서 11명이 출발했다.
사당역 팀에 합류한 나도 만날 곳에 가니 수인, 영숙, 숙자가 보인다. 금세 진영애 차가 도착. 짐들은 뒤 트렁크에 싣고 고속도로 방향으로 부지런히 달리는데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용인을 지날 때는 강풍에 진눈개비가 쏟아진다.
가면서 전화로 양자 미자 그리고 내년 동기회장으로 내정된 강인자 미희 영경 소화의 출발 상황을 확인한다. 행선이가 불참해서 아쉽다.
문막 입구부터는 진눈개비가 눈으로, 점점 폭설로 변했다. 리조트 콘도에 입실한 시간은 오후 4시 30분경. 도착 하자마자 각자 가져온 반찬 등 먹거리들을 식탁에 내놓는다.
우아! 한정식 상차림이 부럽잖다. 찰밥, 맛갈스레 양념에 재온 불고기감을 비롯해 깻잎장아찌, 마늘장아찌, 토마토 풋고추 장아찌, 깍두기, 무김치, 각종 쌈채소, 부추겉절이, 갓김치, 고들빼기김치, 동치미, 우거지국, 식빵, 각종 과일, 커피....없는 게 없다. 양자는 그릇까지 챙겨왔고, 소화는 일회용 컵도 챙겼다. 나만 빼고 대부분 생활의 달인, 요리의 달인들이라 역시 섬세하게도 이것저것 챙겨왔는데 겹친 반찬이 없는 게 신기하다.
서로 의논한 일이 없는데 어찌 이렇게 골고루 가져올 마음들을 품었을까?
오래 전 읽은 오정희 소설 속에 “바람은 그리운 넋끼리 부르는 손짓이란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이는 필시 우리 매화당 친구들 사이를 수십 년간 지켜본 바람들이 허가 없이 왕래하며 “넌 OO을 가져가라.”고 부르고 가르친 덕분이 아닐까?
모두들 엄친딸에 센스재~~~~~~ㅇ 이.
일부는 부지런히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일부는 발코니 창으로 주변 산에 내리는 함박눈이 만들어내는 설경을 감상한다. 산과 들에순식간에 쌓인 눈이 연출한 설경은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공간으로, 한 마디로 청전 이상범 화백이 그리고 방금 붓은 던진 듯 생생한 한 폭의 설경 산수화다. 좋은 순간을 놓치지 않는 수인이는 카메라에 산수화를 담느라 분주하다.
첫눈이다!!! 오래 묵은 장맛처럼 좋은 친구들이 함께 바라보는 첫눈이라 더더욱 감동적이다. 이 순간은 아무 근심도 없고, 仙界에 들어간 듯 참 행복하다. 눈은 그치지 않고 점점 눈발이 세진다. 가족들에게 전화하니 수도권엔 눈이 안 왔단다. 가족들은 첫눈을 못보는데 매화당만의 행운이구나.
매화당의 변함없는 발전과 우정을 비는 건배를 한 후 입에서 살살 녹는 숯불구이 불고기를 서로 먹으라고 권하며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식사를 끝낸다. 겨우 5시 반이다.
여기서 수수께끼 하나.
문제 : 다들 점심 잘 챙겨먹고 왔는데 평상시보다 훨씬 일찍 시작하고도 빨리 식사를 끝낸 이유는?
답 : 모든 것이 너무 맛있어서 남보다 먼저 많이 먹으려고...
후다닥 설거지를 마치고 휴식 시간. 잘 시간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남자들끼리 이런 모임을 갖는다면 무얼 할까? 고스톱이나 음주 타임이겠지? 우린 아주 건전히 보낸다구.
그래서 노래방으로 고고. 다들 나.가.수 출전 후보감이다. 왜들 그렇게 잘하는지. 영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멋들어진 춤도 일품. 수인이는 역시나 바쁜 찍사다. 룸으로 돌아와서는 대화 시간. 우리 모임에 빠지지 않는 요리 달인들의 요리 강의가 첫 순서로 예외 없이 시작한다. 어머니들한테 배운 것과는 다르게 경험으로 터득한 독창적인 비법들이 술술 나오고 모두들 적거나 머리에 담는다.
이어서 재치있는 입담과, 유머들로 끊임없이 웃고, 의사의 오진으로 순간 죽음의 공포를 겪었던 소화의 얘기 등 건강 얘기 등을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내고 11시 반에 잠자리에 들어갔다.
다음날 4일 아침엔 원래 부근 산에 오를 예정이었으나 강추위로 길이 얼어붙어 등산은 포기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몸 건강, 마음 건강을 최대의 행복으로 알고 실천하는 매화당 마님들이 아니냐.
그래서 등산 대신, 영경이의 시범으로 30분간 열심히 체조에 몰입한다. 온 몸의 근육을 풀어주는 동작들이 끝나고, 라인댄스를 배우는 팀이 약간 연습을 한 후 씻고 아침 식사 준비에 돌입한다. 여럿이 하니 후다닥 순식간에 준비 끝. 이번 메뉴는 토스트와 달걀 반숙, 우유, 사과, 귤, 바나나, 커피. 역시 토스트와 반숙을 맛있게 하는 비법 설명이 곁들여지고, 건강 얘기와, 이것저것 폭소를 자아내는 재밌는 얘기들이 계속 쏟아진다.
밖을 보니 밝은 햇살이 눈부신데 해를 받은 설경은 더욱 장관이다. 비록 우리들의 주 임무인 등산은 못했지만 첫눈을 여한 없이 보고, 많이 웃고, 많이 대화하며 스트레스를 다 날리고, 돈독한 우정을 다졌으니 여한 없는 송년회가 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얻은 행운의 보너스는 이번 일정이 모두 공짜라는 것. 처음으로 회비를 내지 않고, 기금으로 처리하고도 남았다. 역시나 알뜰한 살림의 달인들 덕분임을 두말할 필요가 없다.
준비해온 음식으로 점심까지 맛있게 포식한 후 오후 1시에 룸을 나왔다. 빙판 길에 운전할 친구들을 크게 걱정했었는데 그건 기우였다. 화창한 날씨로 길의 눈이 다 녹아 씽씽 탄탄대로를 달린 것이다. 그럼 그렇지. 그렇구 말구. 7년간 매화당 등산 날엔 눈비로 힘든 날이 없었고, 이번도 예외가 아닌 걸...
오는 길에 여주 휴게소에서 잠시 도킹하여 휴식을 취한 후 아쉬움 속에 헤어졌다.
"벌건 대낮에 집에 가기가 좀 그렇잖니? 영화라도 보고 좀 뭉게다 가자. 집에 가면 남편들 밥 챙겨줘야잖아? "
" 그래도 집에 가야지."
그래서 그냥 헤어졌다. 그래. 잘했지. 모두들 집에선 남편 잘 챙기고 사랑받고 사랑하는 모범 주부들인데....
매화당은 7년 전인 2005년 10월 발족하여 매주 화요일에 청계산 옥녀봉에 오르는데 거른 적이 거의 없다.
앞으로도 20년, 30년간 즐겁게 원정 산행을 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그러려면 우선 건강해야겠지? 모두 건강을 제일로 챙기며 멋있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