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를 기다리며

by 신덕애 posted Nov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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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를 기다리며>

 

이른 새벽에 깼다. Bach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5번, 2번을 라디오방송 음악으로 감상했다.

연주자의 연주 실력이 상당하다. 남성인 줄 알았다.

명품가방을 소개하는 모델로도 활동을 한다는데, 미모와 음악재능까지 가졌다.

진행자는 그녀를 손꼽힐 여류연주자로 내다본다고 했다.

 

문을 열고 내다보니 몹시 춥다. 낙수통의 물이 얼었다.

살얼음이 아닌 제대로 된 첫얼음이다.

날이 밝으려면 시간 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다.

 

갑자기 추워지니 다급함에 겨울용 비단 솜이불을 손질하기로 맘먹었다.

바느질품이다.

노란 국화색 공단에 진분홍 깃을 넣은 겉싸개를 앞면에 붙이는 일이 첫 순서다.

나머지 전체를 감싸는 호청이 분홍색이니 완성되면 그 화려함이 꽃잠자는 신혼의 이부자리가 아닌가?

여기에 나비촛대까지 있게 되면?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다.

 

이불 바느질용으로 굵은 바늘과 질긴 무명실이 따로 있다.

나의 외조모의 유품인 가는 대나무 실패와 그 분이 손수 물레를 자아 만드신 실꾸리를 만지며 오늘은 기필코 이 실을 써 보리라 마음먹는다.

더딘 실 꿰기, 두툼한 솜까지 찌르고 다시 빼내야 하는 바늘 잡이는 과연 쉽지 않다.

 익숙지 않은 솜씨라서 오른쪽 검지가 찔렸다.

한 시간 걸려 화사한 앞면만 붙여 놓았다.

오후에 퇴근하여 호청으로 전체를 싸고 완성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다.

다 되면 한 번은 건넌방 아궁이에 불 땐 후 요 깔고 솜이불 덮고 자며 낭만이 있는 옛 맛을 즐겨보리라.

그러나 이건 방안에서만 한정된 호사다.

그렇게 하려면 방 밖에선 내가 머슴이고 내가 하녀다.

컴컴한 헛간의 해묵은 무쇠 솥에 물 길어다 채우는 일, 낡은 아궁이에 곰 잡는 연기 맡으며 눈물 찔끔거리며 불 때기,

부지깽이로 장작 쑤셔 넣는 마무리까지. 상머슴이어야 한다.

불 때면서 잡생각도 나겠지. ‘아마츄어는 불을 쬔다, 그러나 프로는 불을 피운다’ 혹은 지나간 날의 ‘캠프파이어’ 등등.

 

입동이 지나면 산골 마을은 해넘이가 빠르다.

밤이 일찍 찾아오니 정말 긴 밤이다.

동지까지 계속 밤은 길어지고 낮은 노루 꼬리만 하다던가.

동지를 기다린다. 팥죽도 먹고 낮도 길어지겠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