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직장의 선배 C기자 소식을 수십 년 만에 어제 어느 옛 동료한테서 들었다. 나보다 7, 8세 위인 그는 42세에 어떤 일로 본의 아니게 퇴사한 후 아무 동료와도 접촉 없이 지냈는데 어떤 계기로 근황이 알려진 것이다.
퇴직 후 이혼 당하고, 실명하고 외아들도 유전적으로 실명하고 돌보는 이 없이 극히 참담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이다.
그 불행한 소식을 접하고 옛날 그의 모습이 생각났다.
내가 평기자 시절 그가 3년간 내 상관, 차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는 늘 자기 옆의 부장에 등을 돌리고 앉아서 부장이 자리를 뜨는 순간부터 부장 험담을 시작한다. 부장은 능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자타공인 착한 분이다.
그런 부장이 취재 지시한 것에 대해 왜 하필 자기한테 그따위를 시키느냐는 것부터 시작해서 인신공격으로 끝낸다. 후배로서는 민망한 험담이다.
누가 맞은편에서 그에게 인사할 때 고개만 가볍게 숙이면 면전에선 웃으며 받고, 자기 자리에 돌아와 앉은 후엔 옆 동료들에게 “아무개는 건방지게 고개만 까딱한다. 학교도 삼류대학을 나오고, 아버지가 안 계신 호로자식이라 가정 교육을 잘 못 받았다는 요지로 20분 가까이 헐뜯는다. 반대로 머리를 90도 숙여 인사하면 아첨형 인간이라고 역시 학벌 집안을 들먹이며 공격한다. 인사를 받을 때는 미소 짓고 돌아서면 거품을 물고 험담이다. 그래서 10 미터 밖에서 그를 본 사람은 되돌아가기도 했다.
사내에선 그가 한 시간 떠들면 1개 사단병이 시체가 된다고 쑤군댔지만 그의 험담은 가히 기네스북 감이다. 그렇게 틈만 나면 험담만하는 게 일상인 그를 나중에 알고 보니 8세 때 부친이 소실을 얻어 딴 살림 차림으로써 버림받고 어머니와 둘이 신문 배달 등 험한 알바를 해서 근근 살았고 대학도 국비로 운영하는 지방 대학을 나왔다.
앞에선 미소지으며, 본인 없는 곳에선 양두구육으로 그가 험담을 일삼는 이유는 바로 세상과 타인에 대한 증오심,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는 타인을 분노 표출의 대상으로 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자신이 그 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달랜 것이다.
羊頭狗肉. 양고기를 판다고 가게 앞에 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인데 겉과 속이 다른 사람, 겉만 번드르르한 사람, 이중인격자를 지칭함은 누구나 다 안다.
양두구육 사례는 주변에 많다. 1958년 간첩 누명을 쓰고 18개월 만에 사형당한 조봉암 사건도 그 예, 조봉암은 독립운동가였고, 초대농림부장관과 2선 의원을 지내 이승만에게는 차기 정권을 잡을 유력한 후보로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측근들은 그가 북한과 접촉한 간첩이라눈 누명을 씌워 사형 선고를 하고, 피고 측이 무죄라며 재심 청구한 것을 기각했다. 그 리고 2011년 조봉암은 가혹행위에 의한 제 3자의 자백에 따라 부당하게 처형했으므로 무죄라며 법원은 유족에게 24억 7천만 원을 배상토록 판결했다.
최근엔 대선 후보의 아들이 병역기피자라고 헛소문을 퍼뜨려 탈락시킨 모 의원이 결국 무고가 밝혀져 자신은 형을 살았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린 양두구육의 정치인들은 이 외에도 많다.
정치인이 아니라도 주변에 이런 형 인간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남 앞에선 웃고, 뒤 돌아서면 욕하고, 자기 잘못은 인정 않고 적반하장으로 상대에게 악담과 증오심을 표출하고,.... 그러나 그들 속을 보면 역시 열등감과 세상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함을 느낀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남을 끌어내리면 자신이 우월해 보일 것처럼 착각하는 심리가 안쓰러운 사람들이다.
사람이 죽을 때는 생전에 남과 맺힌 맘을 다 풀고 가야한다고 한다. 실체로 드라마나 주면에서 자기가 잘못했던 사람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사례가 많다. 편한 마음, 깨끗한 마음으로 생을 마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가보다.
불교에서는 죽은 다음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믿는데, 다음엔 죽을 때의 성격을 가진 아기로 태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사고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 한을 품고 자살한 사람, 원한에 가득차서 죽은 사람은 태어날 때 독하고, 악한 인격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도 이제 살아온 날보다는 살날이 너무 짧다. 죄짓지 않고 살아야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부처님이라 불린 성철 스님도 열반(별세)하실 때 “ 내 죄는 수미산(인도에서 가장 높은 산)보다 높다.”고 하셨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어느 곳을 지나다가 풀밭에 앉았을 때 바늘에 엉덩이가 찔렸다. 고요히 참선으로 定(마음이 고요하고 맑은 상태)에 들어가 전생에 개미 한 마리를 모르고 밟아 죽였음을 알았다.
석가모니도 여러 번 전생을 사는 동안 많은 죄를 지으셨다. 하물며 우리 같은 중생이야 죄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짓고도 모른 체 하거나 몰라서 그랬다고 변명하고 면책하려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알고 지은 죄보다 모르고 지은 죄가 더 나쁘다고 하셨다. 알고 죄를 지은 사람은 다음엔 양심상 같은 죄를 안 짓거나 덜 짓고, 모르고 죄를 지은 사람은 죄인지 모르고 계속 같은 죄를 짓기 때문이란다.
善因善果 惡因惡果, 선한 일은 선한 결과를 맺고 악한 일은 악한 결과를 낳는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생각해본다.
선배 C기자가 지금은 참회하고 편한 여생을 보내기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