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225회산행기)
첫 날
비 온 뒤 상큼한 아침, 서울거리를 뒤로 하고 우리는 남녘으로 출발했다. 오전 8시.
아침식사용 김밥과 커피 그리고 간식까지 나누어주느라 잠시 분주했던 분위기가 지나가고 차분해진다. 간 밤 잠을 설치고 늦지 않으려고 서둘렀을 것이므로. 편안히 허리를 기댄다.
내 옆에는 모처럼 참석한 제천댁 덕애가 앉아 있다.
또다시 떠오르는 40주년 한라산행의 기억 한 자락.
갑자기 입벌린 등산화를 어찌 할 수 없어 끈으로 잡아매고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견뎌냈던...자꾸 되새김질했더니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았다. 역시 오래 남는 기억은 사람과의 일인 듯 싶다.
아직까지도 일이 있고, 자주 혼자만의 여행을 즐긴다니 이 친구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가보다. 가고 싶을 때, 먹고 싶을 때, 쉬고 싶을 때, 단순한 듯 하면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밖을 본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제 막 연록을 벗어난 숲의 나뭇가지들이 제 등을 드러내며 어지러이 출렁인다.
어느 새 고속도로를 벗어나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눈앞으로 <까페
전북 남원시 引月面 <두꺼비식당>이다
引月이라, 달을 잡아당겨 무엇에 썼을까? 등불 없는 순이엄마 방에다 달아드렸을까 아니면 이팔청춘들 사랑의 소도구로 사용했을까. < 南原> 하면 연상되는 것은 춘향과 그리고 추어탕이었는데 이젠 달을 추가해야할까보다.
별미 어탕국수로 느긋하게 점심식사.
키 큰 민병훈의 우쿠렐레 반주로 산노래를 다함께 부른다. 그 덩치에 우쿠렐레는 장난감같이 작아보인다. 그래도 악기까지 지참하고 온 성의가 갸륵하다. 반주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들으니 크게 울린다. 그리고 마치 읊조리는 듯한 안치환의 노래를 듣는다 > <남은 세월 동안 우리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네가 살아 있어 좋구나....>
정애가 말했다. < 야, 눈물나려고 그래.> 그말을 들으니 나도 덩달아 눈시울이 더워졌다.
둘레길 3코스 매동마을로 들어선다
때 이른 더위에 내리쪼이는 햇빛이 짱짱하다. 初入엔 그늘이 없어 더웠다. 쉼터가 여러 군데 있다고 하여 한 잔의 찬 막걸리를 기대했으나 오늘따라 문을 닫아 모두들 실망의 한 숨을 내쉰다. 그래도 한발 깊이 들어서니 숲의 그늘과 바람이 모자를 날려버릴 정도로 세차게 불어 시원하다.
땀으로 등을 흥건히 적시며 쉬엄쉬엄 걷다보니 登龜재휴게소에 도착하니 문을 열었다. 모두 환호한다. 멀리 있는 주인 아줌마를 소리쳐 부르니 득달같이 달려 왔다. 순식간에 주문한 막걸리와 도토리묵무침이 바닥났다
이 순간은 행복이라 할 만하다. 끝으로 구절초 식혜로 입가심을 하고 제법 가파른 거북이재를 넘는다.
골깊은 지리산 자락이어선지 오래묵은 우람한 나무들이 도처에 그득하다.
셀 수 없이 자주 눈에 띄는 古木들을 볼 때 마다 외경심과 더불어 머리를 뒤로 젖혀 그 끝을 가늠하며 들리지 않는 숨겨진 사연들을 어림짐작해본다. 맞은 편 산중턱에는 적송이 빼빽하여 붉은 빛이 돈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산 그리고 또 산, 지리산은 그 품이 넓고도 깊음이 실감났다.
고개마루에서 땀을 식힌 후 이윽고 하산길.
등구재 아랫쪽 반대편으로 올라오는 황정환, 민병훈과 합류하기 위해 화살표 방향대로 새로난 길로 들어서서 가다가 두 친구를 만났다
<이 길은 너무 돈다. 우리가 올라온 길로 내려가자> 그 말에 우리는 다시 되돌아섰다.
세 갈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빠졌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우리 일행 이외에 인적은 찾을 수 없었고. 저 아래로 마악 모내기를 끝낸 이 지방의 명물 다랑이논에선 어린 벼를 담근 논물이 찰랑인다. 이 때 갑자기 들리는 고성에 걸음을 멈추었다. 멀리서 보니 앞장섰던 친구들과 어떤 낯선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는 사유지이므로 통과시킬 수 없으니 돌아가라 는 것이었고 <우리는 그럴 수 없으니 그냥 가겠다>는 一行과 충돌한 것이다. < 사대부고씩이나>나온 분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인터넷을 들먹이며 완강히 버티자 양쪽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한참 뒤 일행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누군가가 그 사람을 다독인 듯하다. 그 동네 사람을 그대로 지나쳐 내려오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3년의 소송 끝에 승소했으니 쌓였던 울분이 외지인에게 터진 것 같기도 하고. 또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어쩔 수가 없었고, 안내판을 확실하게 설치하지 않은 까닭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천만 다행이었다. 하마트면 우리의 회장님이 함양경찰서로 출두하는 상황이 벌어질 뻔 했다.
지리산 롯지에 도착했다
登龜 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숙소에 짐을 풀고 남원 實相寺로 향한다. 통일신라 때 조성된 아담한 도량으로 백장암 東西三層石塔을 비롯한 여러 10개의 보물들과 지방유형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있는 千年 古刹이다. 오래된 목재의 나무결에서 천년의 향기를 맡아본다.
너른 잔디밭을 뒤로 하고 둘러 앉아 바베큐로 저녁식사.
들 고양이 서너 마리 냄새 맡고 몰려들었다.
夕陽 무렵부터 둘레의 산 그림자는 시시각각 그 빛깔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빛이 카메라 렌즈에는 푸르게 나타나는데. 이것을<미드나잇불루> 이윽고 하늘은 점점 남청색으로 변하며 별이 하나 둘 그 모습을 드러냈다.
食後 文化行事
섬진강을 기준으로 동편제 서편제로 나뉘는데 東은 남성적이고 西는 부드러워 여성적이라 한다. 흰 모시저고리와 남색치마를 날렵하게 차려입고 앞머리 단정히 빗어 올려 옛 여인처럼 단장한 명창의 소리. 가까이서 들으니 느낌이 사뭇 다르다.
드물게 붉은 옷 입은 藥學博士님의 힘찬 색소폰 연주. 30년 갈고 닦은 소리 밤공기를 가른다 깊깊어가는 밤, 산마을 잔디밭 한 가운데 서보니. 뻐꾸기, 개구리 울음소리가 어두운 宇宙를 건너온 萬 年 前 별빛과 함께 天地四方에 가득 찼다.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 것인가.
피곤해 일찍 잠드는 바람에 새벽 불빛 사라진 밤의 별빛의 파노라마를 감상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아깝다.
둘째 날
아침 1시간 인산죽염에 관한 건강강의를 듣고 서암정사로 출발.
瑞岩精舍. 함양 8경 중 제 6경.
칠선계곡 초입에 자리하여 불교계의 理想世界를 그렸다고 한다.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한 古刹, 벽송사의 부속암자로 주위의 천연암석과 조화를 이루며 원응스님이 自然巖盤에 무수한 불상을 조각 법당을 10여년 만에 완성했다 한다. 바위에 새긴 조각들은 섬세한 표정들이 살아있고 석공의 뛰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굴법당은 특별했다. 불자가 아닌 나도 가만히 합장하고 서늘한 법당 안에서 울려 퍼지는 독경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범종각 아래에 있는 작은 호수는 꽃과 분수로 둘러싸여 있고 역시 정교한 조각작품들로 장식해놓았다. 크고 작은 비단잉어들이 떼지어 헤엄치며 살랑이며 불어오는 바람이 꽃잎들을 헤집어 놓았다.
그저 주저앉아 떠나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멀리서 몰려온 太古淸風이 호수를 감싸고 돈다.
일주문을 대신한 돌기둥에 새겨진 글귀.
百千江河萬溪流(수많은 강물 만 갈래 시냇물)
同歸大海一味水(바다에 가니 한 물맛이로다)
森羅萬象各別色(삼라만상 온갖 모습이여)
還鄕元來同根身(고향에 돌아오니 한 뿌리로다)
뱀같이 구불구불한 오도재길을 지나 지리산 眺望公園 悟道峙에 오른다 해탈의 고개라니, 이 고개를 넘으면 어느 중생이든 그 주변이라도 더듬을 수 있을까? 비록 어느 한 부분 속내를 헤집고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 아득한 산들의 파도를 따라가다보니. 그만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아득해졌다.
上林 숲
新羅末 진성여왕 때 孤雲 崔致遠이 천령군 태수로 있을 당시 거듭되던 洪水를 방지하기 위해 관개수로를 만들고 숲을 조성했던 곳이며국내에서 제일 오래된 人工林이라 한다. 당시에는 대관림으로 불려 관리되었다. 그동안 방치되어 폐허가 된 것을 다시 단장하여 깔끔하고 아름다운 숲으로, 이 지방의 名物로 다시 태어났다
주변에 너른 연꽃밭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최근에 조성된듯한 양귀비꽃밭에서 주변을 붉게 물들이며 꽃들이 강물처럼 일렁인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지만 그 현란한 빛깔은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잎만 푸르게 무성한 연밭에선 아직 일러 꽃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늘봄공원의 마지막 식사
視覺的으로도 고운 五穀밥에 깔끔한 밑반찬들. 여자동문들은 환호했다. 맛있다는 말을 식사가 끝날 때 까지 계속했다. 하물며 남은 밥을 종이에 싸가기까지.
이 때 박상규회장이 우리들 자리로 왔다. < 오늘 점심 식사 어떠십니까?> 하고 활짝 웃었는데 아뿔싸. 이게 무엇인가. 잠깐 혼란스러웠다. 연출인가 아닌가 하고. 옆의 친구를 꾹 찔러 회장님을 향하게 했더니 순간 손으로 입을 가린다. 그리고 5초후 여자들은 그 자리에서 뒤집어졌다. 왜?
회장님의 앞니에 상춧잎조각이 두 개 붙어 있었으니 그 순간 이름하여 朴 <영구>가 되어버린 것, 좀 부풀려서 우리들은 몇 시간 동안 허리를 펴지 못했다. 이것은 예상치 못한 보너스였다.!
언제나 그렇듯 이 번 여행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고 수고한 회장단, 그리고 임원진 여러분께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