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7대 덕만 (德曼, 曼을 萬으로 쓰기도 한다) 의 시호는 선덕여대왕 (善德女大王) 이고 성은 김씨이며 아버지는 진평왕이다. 정관 (貞觀) 6년 임진년 (632) 에 즉위하여 16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선덕왕 (善德王) 이 왕위에 오른 지 5년째인 정관 (貞觀) 10년 병신 (서기 636) 에 자장법사 (慈藏法師) 가 중국으로 유학 갔는데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에게 불법을 전수받았다. 법사가 중국의 태화지 (太和池) 옆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신인이 나타나 물었다. “어찌하여 여기까지 이르렀는가?” 자장이 대답하였다. “깨달음을 구하려고 왔습니다.” “고국에 돌아가서 어떤 이로운 일을 해야 합니까?” “황룡사의 호법용 (護法龍) 은 바로 나의 맏아들이오. 범왕(梵王)의 명을 받고 가서 그 절을 보호하고 있소이다. 고국에 돌아가거든 절 안에 9층 탑을 세우시오. 그러면 이웃나라들이 항복할 것이고 구한 (九韓) 이 와서 조공할 것이며 왕업이 길이 편안할 것이오.” 말을 마치자 드디어 옥을 받들어 바친 후에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정관 17년 계묘 (서기 643) 16일에 자장법사는 당나라 황제가 준 불경과 불상, 승복과 폐백 등을 가지고 귀국해서 탑을 세울 일을 왕에게 아뢰었다. 선덕왕이 여러 신하들과 의논하였는데 신하들이 말하였다. “백제에게 장인들을 청한 이후에야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보물과 비단을 가지고 백제에 가서 장인을 부탁하였다. 아비지 (阿非知) 라는 공장이 명을 받고 와서는 나무와 돌을 다듬었고, 이간 (伊干) 용춘 (龍春) 이 공사를 주관하여 200여 명의 장인들을 통솔하였다. 자장법사는 오대산에서 가져온 사리 100알을 탑 기둥 속과 통도사 (通度寺) 계단 (戒壇) 과 또 대화사 (大和寺) 의 탑에 나누어 모셨는데 연못에서 나온 용의 부탁에 따른 것이었다. 탑을 세운 뒤에 천지가 태평하고 삼한이 통일되었다. 명현 안홍 (安弘) 이 지은 「동도성립기 (東都成立記)」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다. “신라 제27대는 여왕이 임금이 되었다. 만일 용궁 남쪽의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운다면, 이웃나라가 침략하는 재앙을 진압할 수 있을 것이다. 1층은 일본 (日本), 2층은 중화 (中華), 3층은 오월 (吳越), 4층은 탁라 (托羅), 5층은 응유 (鷹遊), 6층은 말갈 (靺鞨), 7층은 거란 (丹國), 8층은 여적 (女狄), 9층은 예맥 (穢貊) 이다.” 황룡사 구층탑이 있었던 자리의 탑지 가운데에는 사리를 넣어두었던 심초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