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겨운 추억 한마당 - 선농 축전

by 이향숙 posted May 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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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에 하루, 천하부고 선후배들이 모여 하루 동안 을지로 시절에 꿈과 젊음을 공유하던 추억을 새로이 더듬어보는 날이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높고, 초여름의 따사로운 햇살이 정겨운 5월 12일. 서울대 교정.

올해로 22주년을 맞은 선농 축전이 열렸다.

  1992년 시작할 때부터는 체육대회인지 등반대회인지  라는 명칭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축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체육대회 때는 오전에 관악산 삼막사까지 등산하고 내려와서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한 후 기별 장기대회와 줄다리기 공굴리기 게임 등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등산과 장기대회로, 체육행사가 없어진 대신, 보다 흥을 돋우고 다수가 참여하는 축제 마당으로 변했다.

  나도 초기엔 삼막사까지 갔었는데 몇 년 전 모래흙에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두 번 찧은 후부터 등산을 피해왔다. 동문들 대부분도 마찬가지로 등산을 점점 꺼려서 이젠 초장부터 텐트 아래서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날 오전. 집안 일 이것저것 하다가 아차 늦어서 점심 때 쯤 겨우 모임 장소인 노천 잔디광장에 도착했다. 기별로 텐트 아래 모여서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내가 제일 꼴찌로 도착한 줄 알았는데 더 있으니까 몇 명이 더 도착한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우무일이 지팡이를 짚고 밝은 표정으로 참석했고, 평소 보기 어려웠던 많은 얼굴들이 웃으며 맞아준다.

  곧 도착한 도시락은 왜 이렇게 크지? 보통의 두 배 크기에 스티로폼 케이스가 장난이 아니다. 음식 질과 양은 보통이지만....

  하여간 맛있게들 먹고 정애가 준비해온 수박까지 두 조각씩 먹고, 기분 좋은 식사였다. 그러고 보니 수박 등을 실어 나른 騎士 박상규 동문이 안 보여 물어보니 집안 일로 돌아갔단다. 항상 김밥 등 먹거리를 맛있는 걸로 골라 잘 준비하는 박정애와, 언제나 기사도 정신이 넘치는 봉사자 박 동문에게 대표로 감사한다.

  식사 후 양산과 등산용 스카프를 한 장씩 회장단이 나눠준다. 예쁜 꽃무늬가 들어있어 모두들 예쁘다고 야단이다. 과거엔 무지로 고르던 남자 회장단이었는데 여자 회장이라 역시나 섬세하고 미감이 돋보인다.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실내체육관으로 옯겼다. 우리 16회 지정석은 2층 중앙 석이다. 기별로 지정석에 자리 잡고 앉아 2시30분부터 총동 사무처장 후배의 사회로 장기대회에 들어갔다.

  첫 공연은 선농 합창단의 흘러간 노래 메들리 송으로 장식, 모두 박자를 맞추며 흥겹게 분위기를 돋우었다.

  올해로 졸업 40주년을 맞은 25회 후배 팀은 아주 다양하고 야심찬 무대를 꾸몄다. 밴드 연주와 싸이의 강남스타일 군무, 학창시절 교복차림의 수업 모습 재현 등으로 시종 웃음을 자아냈다. 당연히 나중에 이 팀이 대상으로 상금 50만원을 거머쥐었다.

이어 35회의 사물놀이 연주, 13회 선배들의 합창, 어린이들의 춤 경연, 41회와 31회 간의 6인1각 대결, 퀴즈 게임 등이 있었다.

  퀴즈에서 “인삼은 6년 근을 최고로 치는데 산삼은 어떤 때 캐느냐?” 라는 문제에 박미자가 “보는 즉시.”라고 정답을 맞춰서 야외용 의자 9개를 상품으로 받아 옆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행운을 차지했다.

퀴즈 풀이 후 교가 제창을 하고 헤어져, 호암회관(서울대 교수회관)으로 옮겼다.

  신록이 우거진 숲 아래에서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오리구이와 국수류의 퓨전 요리로 저녁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며칠 전 온라인에서 읽은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내용이 생각난다.

  71세 할아버지가 스님에게 “어떻게 하면 죽을 때 웃으며 죽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스님의 즉석 답은 “잘 늙으면 된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봄꽃은 필 때는 아름답지만 지고 나면 떨어진 꽃잎이 추해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가을 단풍은 곱게 빨간 색으로 물들어 떨어지면 누구나 예쁘다고 하며, 혹은 주워서 책갈피에 끼워두고 본다. 늙는 것도 이와 같다. 곱게 물든 단풍이 되면 죽을 때 웃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늙을 수 있을까? 욕심을 줄여라, 과로하지 말라, 과음과식하지 말라, 말을 많이 하지 말라, 재산을 자식에게 미리 다 물려주지 말라.“였다.

  우리는 지금 그냥 추하게 지는 봄꽃이 아니라,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확인한 즐거운 하루였다.

  끝으로 이 날을 위해 수고한 회장단 등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