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모산 산행기

by 이성희 posted Dec 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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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행 기 (196회)

                                                                               이 성 희

 

 지난 봄 미국에 간 외손녀에게서 두 번째 편지를 받았다. e_mail을 하자길래 그러지 말고 손으로 써서 우체통에 넣으라고 했더니 고맙게도 고분고분 말을 들어준 결과였다. 우리 집 우편함에는 늘 경조사 안내장이나 공과금 고지서 따위의 유인물만 들어 있는 것이 쓸쓸했었는데 아이의 편지가 이를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다. 깨알같이 박아 쓴 글 속에 아이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묻어났다. 그리하여 십수 년 만에 카드라는 것을 사서 아이에게 보내주었다. 겉봉을 쓰고 우표를 붙여 보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언제나 무덤덤하게 지나가던 성탄절, 올해는 방점을 찍을 수 있어 즐거웠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게 산행은 그렇게 작지만기쁨이고  즐거움일 수 있어 빠뜨리고 싶지 않은 중요한 일정이다.

 

올해의 마지막 산행일,

성탄절 아침이어서일까 아니면 추운 날씨 때문일까.

일원역에는 단지 아홉 명만이 모였다. 몸과 마음이 모두들 자라목처럼  움츠러들은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는 썰렁하고 쌀쌀한 鋪道 위를 무심하게 걸어 이윽고 대모의 품에 들었다. 해발 3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야트막한 산이다.

며칠 전 내린 눈발은 얼어붙은 흙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나뭇잎 부스러기, 먼지 따위와 얽혀서 발길에 채이고 바짓가랑이 사이로 엉겨붙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바람이 불지 않아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운 날씨여서 다행이었다. 지레 겁먹을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좀 더 많은 동문들이 함께 했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산 등성이에서 아랫동네에서 올라온 김상건이 합류하여 열 명을 채웠다.

잠시 둘러서서 따끈한 생강차도 마시고 막걸리도 한잔씩 돌렸다.

잡학박사 이재상의 재담은 오늘도 어김없이 빛을 발했다.

이 박사 가라사대, 금년의 사자성어는 <朝臥晩起>로 하자고.

무슨 뜻일까. 아침에 잠에서 깨어날 때 천천히 조심해서 일어나라는 뜻이라고 하니 모두 귀담아 들어 건강을 챙기면 좋을 일이다.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것, 보내지 않아도 떠나가는 것이 어디 사랑 뿐이겠는가.  바라지도 않았는데   어르신이란 이름이 소리도없이 내게 얹혀졌다, 할머니는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어도 그 호칭만은  빨리 듣지 않았으면 했는데... 남이 보는 시선이 그렇다면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보내고 싶지않은 시간들은 또 그렇게 빠르게 스쳐가고.

지나간 모든 일들이 질곡의 터널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오직 그리움으로만 남아 있다고 해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삶이란 되풀이되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지 않은가. 그리고 다시 새로운 여정을 꿈꿀 수 없으니 적막하다.

식당의 따뜻한 바닥에 주저앉으니 갑자기 노곤해졌다.

펄펄 끓는 물속에 산 낙지가 몸부림치고 있었다. 생명이 사라지는 모습은 참으로 여러 가지 형태인데 이건 아무래도 잔인한 일인 듯 싶은데. 어쨌거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술병을 들고 찾아온 친구들이 새삼 고맙고 한 모금의 강렬한 액체가 목젖을 타고 넘어와 우정을 확인시켰다.

박회장, 그리고 박부회장 일년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동문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산 ; 박효범 정기봉 이재상 남득현 김윤종 민일홍 강기종 김상건 이성희 김양자

 식당 ; 박미자 이향숙 김성광 박찬홍 신해순

 찬조 ; 이원구 (1000,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