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 Howard

by 최 영 일 posted Apr 2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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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우리 둘째  봉석의  친구  Don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Howard가  그의 형 Don과  그의 부모와 지냈던 과거의 이야기를 마치자 마자 주위는 갑자기 숙연해 졌고  Don이 신랑 신부의 좌석에서  내려와  Howard를 포옹하고  둘이는 한동안 울고 있었습니다. 나도 멀리서 같이 울었습니다.   

   25년전 Don은 8살,  Howard는 3살 이었습니다.  이민 역사가 비슷한 우리는 글렌데일-라크레센타 지역에  같이 살면서,  6-7년간 같은 교회를 다니며, 생소한 이민땅에서 자주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봉석이는 같은 나이의 Don과, 또 봉석의 동생 윤석은 Don의 동생 Howard와 온통 사내놈들 만의 환상의 짝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큰 놈 홍석까지 다섯 놈들이 모이는 날이면 그날의 리빙룸은 장난감과 먹을 것으로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나보다 세살 아래의 그들의 아빠도 나와 죽이 잘 맞았습니다. 서울의 명문고와 대학을 나온 그는 나처럼 상사 생활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그와 나는 할 얘기가 많았습니다.  과묵한 그는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몇 마디 슬쩍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시간이 좀 지나야 미소를 짓게  하는 농담을 잘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발렌시아 지역으로 이사간 다음 몇 년 후 비보가 날아 왔습니다.  Don의 엄마가 암으로 별세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례식에서 얼굴이 초췌해진 Don의 아빠를 위로하며 걱정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남편과 자식들을 위하여 아름다운 헌신을 하였던 부인의 죽음을 얼마나 많이 슬퍼할 것이고 또 이기어 나갈 것인가,  그렇게 훌륭했던 부인 없이  한창 성장기에 있는 어린 두 아들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우리가 생각해도 아찔 하였습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났을까, 이번엔 우리도 쓰러질 뻔한 비보를  또 받았습니다.  Don의 아빠도 그의 생을 마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나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이러한 인생의 혼돈상태에 멍하여 있었고 뭔가 한없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러한 혼돈의 날들에도 봉석은 Don과 자주 어울리며 다니었습니다.  거기에는 또 다른 사나이 David도 꼭 끼어 있었는데, 그들이 운전을 하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면서 서로 만나는 회수가 더 많아지고 밤늦게 까지 쏘다니며 그리고 각자 다른 도시의 다른 대학에 들어가고 난 다음에도 명절때나 서로의 생일, 그리고 가끔 주말에 꼭 만났습니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Don, David, 봉석- 이 셋을 삼총사라고 불렀습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서로 걸 프랜드가 생기면 누구에게 보다도 먼저 소개하고 같이 어울리었습니다. Don은 나에게도 몇 년 전 자기 걸 프랜드를 소개하였었죠.     

    Don은  어제 석양이 눈부시게 빛나는 파사데나의 멋지고 아름다운 칼텍 정원에서 그 걸 프랜드와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어제 아침부터 나는 몹시 가슴이 설레 이었습니다. 우리 봉석이는 몇 일 전부터 Don의 웨딩 준비를 돕는다고 싱글벙글 부산하게 다니었지요.        

    신랑 Don의 입장 – 2세 목사인 사회자는 유창하고 익살스런 영어로 Dr. Don  Park의 입장을 알리었습니다.  보우 타이가 달린 예복속의  훤칠한 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핀 행복한 미소, 날씨가 좀 더운가 했더니 저녁이 되면서 딱 기분 좋게 살랑되는 바람, 그 행복한 바람을 맞아가며 그를 어렷을 적 부터 알아왔던 우리  모든 부모들의 자식이자 멋진 성형외과 의사 Dr. Don Park이 서 있었습니다.  그 옆에 들러리로 서있는 그의 친구 봉석 그리고 삼총사중 한 청년이며 정형외과 의사인  Dr. David Kim도 멋져 보였습니다.     

    이날 피로연에서 Don의 동생 Howard가  형의 결혼을 축하하며 들려준 스피치는, 지금까지 내가 들어 왔던 모든 결혼 축하 메시지중 가장 훌륭하고 멋지고 기쁘고 또 한없이 눈물을 흘리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영어이어 다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녀석은 즈이 아빠와 엄마가 살아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형과 형수에게 전해주었을 권고와 기쁨의 표현을 대신 전해 주었습니다. 그중 가장 알아 들을 만한 것은,  돈을 낭비하지 말고 할인 쿠폰 같은 것을 적극 사용할 것이며, 이웃에게  늘 너그러워라,  나누며 살라…등.  정말로 내가 기억하는 그 두 부부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 Howard는 그의 부모가 생전에 귀가 따갑도록 들려준 이야기를 대신하여 형과 형수에게 들려 주는 듯 하였습니다. 그는 엄마와 아빠가 왜 이 자리에 참석을 못하였나를 설명하면서 잠깐 말을 멈추고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또 형수를 맞이하게 된 것이 마치 잃었던 엄마를 찾은 것 같은 기분으로 기뻐하고 환영하며 스피치를 끝내자 신랑인 형이 뛰어내려 오고 둘은 오래 포옹하며 서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우리 모두도 울었지만 너무 행복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참 예민한 나이에 엄마 아빠 없이 이 둘을 이렇게 손수 키우고 훌륭하게 성장시키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다시 한번 찬양하고 고급 스테이크와 와인을 마시며 축하 또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 스피치로 우리 모두를 울리었던, 소년 시절의 장난꾸러기, 이제는 컹컹거리는 목소리와   동네 아저씨같이 생긴 Howard는 그 유명한 뉴욕 컬럼비아 의대 졸업반이고,  다음달 뉴욕에 갈 일이 있어 녀석과 같이 만나 저녁을 같이 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2011년 4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