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제 역

by 최 영 일 posted Feb 1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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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하이웨이 곳곳에 입국자들을 위하여 구제역에 대한 주의사항과 경고문이 붉은색 전광판 글씨로 안내 되어 있었습니다. 뭔가 시급하고 어려운 일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닷새 동안 잠시 노모의 수술과 회복 때문에 급히 서울에 다니러 온 나에겐 구제역에 대한  현실감이나 긴박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른 아침 전해들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고국의 뉴스 시간에 영상으로 보여진 어미 소와 베이비 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미 소가 감염 되어 부득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곧 처분과 매몰 직전에 있게 됐는데 새끼 소에게 죽음 직전에서도 젖을 먹이고 있는 엄마 소의 모습이 방영되었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엄마 젖을 열심히 빨아 먹고 있는 새끼의 모습과 함께..

소의 얼굴은 우리 집 강아지 패니의 얼굴보다 훨씬 순박해 보입니다.  소는 그가 하는 일에 비해 그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고 더욱이 귀여움도 받지 못하고 삽니다.  어깨에 멍에를 매고 밭을 가는 일, 무거운 짐을 나르기도 하고, 새끼들을 많이 낳아야 취급을 받고 그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또 사람들이 그 젖을 쥐어 짜 돈을 벌어 드립니다. 어느날 갑자기 우시장에 끌리어 나가 낮모르는 새 주인에게  팔리어 가며,  또 어느날, 그의 마지막 날 도살장에 끌리어 갈 때도 반항 한번  못하고 죽어 갑니다. 또 죽어서도 그 몸과 가죽을, 하다못해 뼈까지도 사람들에게  모두 바치는 그 소의 얼굴과 느린 발걸음을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어미 소가 병에 걸려 죽임을 당하기 직전까지도 자기 새끼에게 마지막 젖을 먹이는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오늘 새벽 교회에서 전해 듣고 고국의 저녁뉴스 시간을 기다립니다.  오늘도 경상도 어느 마을에서인가 수십 마리의 소가 매몰되었고 그 장소에서 환경오염의 처리가 잘 안되어 큰 문제라는 보도입니다.   이상하게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 중 암소들도  많았을 터인데 새끼 소들은 이제 누구의 젖을 멱을 것인가. 그 젖을 먹은 베이비들도 감염되어 죽임을 당할 것인가. 구제역 –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이제 나는 이 어미 소와 새끼 소를 생각하게  됩니다.

마침 오늘 우리 모국에서는 정월대보름,  견과류를 먹는 날입니다.  여기 내 나라가 아닌 이국의 하늘에도 비가 온 후 보름달이 아주 가까이 선명하게 얹혀 있습니다.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대신,  어미 소 한마리와 그 새끼가 보름달속에 나란히 서있습니다. 어쩐지 그들의 얼굴이 그 달 처럼 밝아 보이지가 않습니다.  

구제역이 빨리 사라지기를 달무리가 예쁜 하늘을 향해 간절히 부탁해 봅니다.

2011년 2월 16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