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린다.
가느다란 빗줄기로 봄비가 내리면 속삭이는 듯한 빗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비에 젖은 나무와, 길, 우산 모두가 촉촉이 젖어 윤이 흐른다.
먼 산을 바라보면 높고 낮은 골골마다 흰 안개가 산자락을 휘감으며 산위로 오른다. 산이 살아있는 존재로 보인다.
이런 날의 산색은 아늑하여 오래도록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해마다 스스로 오는 봄인데 올해는 봄을 몹시도 기다렸다.
생애 처음으로 맞이하는 손님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맞는다.
봄비마저도 참으로 아름다운 연인처럼 반갑다.
오늘 3~4교시엔 <슬기로운생활>의 ‘ 봄이 왔어요 ’ 단원이었다.
시간표엔 <슬생>이라 써 놓는 (사회+과학) 통합교과다.
일 학년 어린것들은 아직 계절의 순서도 모른다.
운동장가의 꽃밭에 빨갛게 싹이 나온 돌단풍을 보고 그려보는 계획을 세웠지만 비 때문에 교실에서 수업한다.
교과서엔 봄꽃 사진과 초록새싹 그림으로 화려한 들판이 묘사되어 있다. 리틀 젠틀맨 준희는 수업에 집중하며 정확한 답변으로 나를 놀라게 한다.
어제는 자주 이용하는 영상장치에 문제가 생겼었다.
화면과 빔의 각도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책상위에 걸상을 올리고 천정에 있는 빔을 손보려 하자
운이가 의자를 들고 오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의자를 꽉 잡아주며 도우미 노릇을 톡톡히 했다.
문제해결 실전에 강한 운이. 쓸모 있는 녀석이다.
여자 어린이가 둘 뿐인 우리 반. 지원과 해진이는 똑똑하고 아는게 많은 운이 보다 준희를 더 좋아한다.
운이는 남의 잘못을 재빠르게 또 화를 내며 말한다.
하지만 준희는 상대방이 마음을 다칠까 봐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한다.
인격은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나보다.
연예인이 꿈인 해진이는 반짝이는 빨간 손톱 아가씨다.
들어 내놓고 준희를 좋아한다. 며칠 전 일이다.
방과 후 활동을 위해 바이얼린부와 첼로부를 조직 할 때였다.
희망조사서에 바이얼린부로 써 온 해진을 사정상 첼로부로 바꾸려고 전화를 걸었었다.
해진이는 울고불고 바이얼린부만 하겠다고 고집했다.
다음 날 준희가 첼로부인걸 안 해진이는 즉시 자기도 첼로부로 바꾸겠단다. 기가 막혀서
“ 해진아, 넌 준희의 어떤 점이 좋아?”
“ 네에, 준희는요오, 네에, 안경을 벗으면요, 네에, 눈이 멋있어요”.
나야말로 문화충격에 말이 안 나왔다.
과자와 색종이만 좋아 할 나이 여덟 살 해진.
“ 공부를 열심히 해서요.”
“ 예쁜 옷을 입어서요.” ....... 이런 답이 나올 줄 알았다.
해진이는 쉬는 시간에 <죽어도 널 못 보내> 이런 노래가사를 화이트보드에 줄줄이 써 놓는다.
인생의 봄은 시도 때도 없이 오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