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한 두레박씩 퍼내어도
우물을 들여다 보면
덜어낸 흔적이 없다
목숨은 우주의 우물에서 길어올린
한 두레박의 물
한 모금씩 아껴가며 갈증을 견디지만
저 우물 속으로
두 번 다시 두레박을 내려보낼 수는 없다
넋을 비운 몸통만
밧줄도 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일 뿐
깊이 모를 우물 속으로
어제 그가 빈 두레박을 타고
내려갔다.
청년시절 어떤 문학써클에서 만나 소월시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으로만 알고 교유하는 벗 김명인 시인의 '파문'이라는 시집에 있는 글을 여기 옮겨 적었다. 이토록 깊은 명상의 결과물을 아무렇지도 않은 양 끄적거릴 수 있는 그가 멀리 피안에 있는 듯 다른 이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