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우 옛집>에서

by 신덕애 posted Nov 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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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분은 가셨지만 그 분의 예술적 품격과 삶이 담겨 있는<최순우 옛집>을 방문했다.

  지난 초가을 「김우영 사진, 우리것을 담다」-혜곡 탄생100주년 기념전-을 할 때였다.

  오후4시가 되면 대문을 닫는 성북동 골목 작은 한옥.

  안방, 건너 방, 사랑방에 전시한 묵화 같은 겨울사진 작품이었고 눈에 잠긴 선교장, 청량사,소쇄원을 표현

  한 것이었다.

  그 날은 시간 여유 없이 30분간만 보고 나와서 아쉬운 맘으로, 사진예술에 관심 있는 여 동기 JSJ에게 감상

  권유 문자를  보냈었다.

 

  오늘은 늦가을.

  그 옛집의 속 표정을 보고 싶어 다시 찾아왔다.

  돌계단 몇 개 오른 대문을 들어서면 앞마당.

  구석진 곳에 있는 정사각형 우물 옆에 수줍게 놓인 작은 빨랫돌을 볼 수 있다.

  물 길어 밥 짓고 빨래하고 걸레를 방망이로 두드려 빨았을 소박한 한옥의 살림살이 정경.

  그리움을 담아 한참이나 보았다.

  우물 한 걸음 뒤쪽엔 곧게 자란 큰 향나무 한 그루.

  그에 짝을 이루어 휘어지며 비틀며 곡선미를 보여주는 소나무가 있고.

  작은 평수의 한옥임에도 걸어서 사방으로 흙을 밟으며 다닐 수 있다.

  '춘향전' 판소리에도 사랑스런 춘향의 뒤태를 보며 사랑의 농도가 깊어졌듯이 이 집에도 뒤태가 있다.

  오! 너무도 아름다운 옛집의 후원.

  좁고 작은 공간에 석조물과 흙과 나무가 각기 완성된 예술작품처럼 잘 어울리게 자리하고 있다.

  그 곳 소품들은 미술사학자이며 박물관 문화재에 관한 예술인의 안목이 들어나는

  아담하고 정갈한 것들이었다.

 

  긴 툇마루에 걸터앉아만 있어도 시국으로 인한 복잡한 마음을 달래주며 쉬게 해 준다.

 

  키 작은 조릿대의 댓잎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세 갈래 가지로 높이 자란 감나무 꼭대기엔

 붉은 감 너 댓개가 달려있다. 

 모과 산수유 밤나무등. 옆 집 경계에 있는 단풍나무 아래엔 장독대가 있다.

  배부른 항아리, 긴 새우젓 독, 목이 가는 술 단지, 잿빛 시루도 있다.

 

  나의 눈길을 오래도록 붙잡은 건 울퉁불퉁한 돌을 깔아 놓은 약 5미터 길이의 깜찍한 오솔길이다.

  그 길로 들어서는 첫머리에는 길 양옆으로 석조물 2인이 서 있다.

  아기같이 작은 키 인데 하나는 엄숙하고도 진중한 표정으로..

  다른 하나는 슬쩍 재미나게 웃는 모습으로.   

  우리나라 여행지 곳곳에 서 있는 돌하루방과는 퍽 다른 신선함이 있다.

 

  맑은 물이 담긴 돌그릇이 여기 저기 열 군데나 놓여 있다.

  '혜곡 선생님도 새를 무척 좋아 하셨나봐. 새들이 마실 것, 목욕물을 인심 좋게 준비해 놓으셨게' 

  잠시 후 그 돌확들은 지붕에서 낙수되는 물받이 그릇이란 걸 알게 되어 멋 적게 웃었다.

  그런데 물 받는 돌그릇들은 모두 다른 크기 다른 무늬로 보는 재미를 더한다.

 

   '너그러운 아름다움과 멋'

   '어리숭하게 생긴 둥근 맛'

   '기름지지 않은'

   '익살의 아름다움' 등 감각과 감성을 풍부하게 담은 혜곡 선생님의 글들.

 

  간송 전형필과는 각별하게 지내며 간송에게서'순우'와 호 '혜곡'을 받으신 본명 최희순 선생님 댁.

  1976년~1984년까지 12년 간 마지막 노후를 지내신 집.

 

     "참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신 분이예요 자연이 아름다운 것을 모르면 한국미를 알 수 없거든요" 라고

  그 분을 회고하는 정양모 씨의 말을 새기며 문 닫는 시간까지 옛집에서 물 흐르는 것처럼 하루를 지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