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17, 김용범의 [채송화]

by 이진흥 posted Dec 0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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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곳 게시판에 읽을거리(반갑고 재미나고 감동적인)가 많아서 [시와 함께]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황우석 교수 연구에 대한 윤리문제와 진위 논란으로 시끄러운 꼴을 보면서 속이 몹시 상했습니다. 내가 조선일보 독자이므로 혹시 너무 편향된 시각으로 특정 방송이나 소위 진보언론 혹은 단체들을 싫어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 보지만,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나이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튼 오늘 아침 신문을 읽고서도 속이 불편했습니다만, 속도 삭일 겸해서 오랜만에 [시와 함께]를 올려봅니다. 계절적으로 여름에 어울리는 글이어서, 겨울에 읽으니 좀 어색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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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컵의 하오는
아름답다.
죽은 새 몇 마리의
살점같이
채송화가 피었다.

김용범(1954- ), [채송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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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컵의 하오는/ 아름답다"라니..... 대담한 표현이지요? 컵은 물이나 술 같은 액체를 담는 도구(그릇)인데, 비어있기 때문에 도구성을 벗어나 그 자체로 빛납니다. 그런데 이 정황을 시인은 <하오의 빈 컵>이라고 하지 않고 <빈 컵의 하오>라고 씀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새로 구축된 시공(時空)에 느닷없이 채송화가 등장합니다. 핏빛의 연약한 줄기에 핀 작은 꽃들........ 시인은 그 꽃들을 하필 죽은 새 몇 마리의 살점에 비유함으로써 <빈 컵의 하오>는 아름다움을 넘어서 고통과 비극적 깊이를 가지게 합니다. 빈 컵의 하오에 돌연히 등장한 죽은 새의 살점 같은 꽃..... 죽음과 재생이 바로 이 아름다운 시간(하오)과 공간(빈 컵)에서 합일된 것이지요. 이 짧은 시에서 오는 긴장과 전율..... 그것은 바로 빈 컵의 하오라는 순수공간에 채송화로 비쳐진 죽음과 재생의 음영 때문이 아닐까요?

이 진 흥 - 매일신문, 2005/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