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9, 정지용의 [바다2]

by 이진흥 posted Aug 2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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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지용의 작품 [바다 2}를 감상해 보려고 합니다. 그의 작품 [유리창]은 아마도 우리 현대시의 가장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고,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로 시작되는 [향수]는 아마도 가장 사랑 받는 노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의 [유리창]을 대단히 좋아하지만, 아직 여름이 가기 전에 바다의 이미지를 한 번 떠올려보고 싶어서 이 작품을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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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 떼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로 몰아다 부치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씻었다.

이 애쓴 해도(海圖)에
손을 씻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휘동그란히 받쳐 들었다!
지구(地球)는 연(蓮)잎인 양 오므라들고 ……펴고 …….

정지용(1902-1950), [바다 2]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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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무더우니 바다가 생각납니다. 바다 생각을 하니 정지용의 바다가 떠오릅니다. 바다를 이렇게 생동감 있게 감각적으로 묘사한 것을 본 일이 있는지요? 바닷가에 밀려왔다 밀려나가는 푸른 파도가 마치 <뿔뿔이 달아나려는 도마뱀 떼>같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꼬리가 잡히지 않는> 재빠른 동작이 경쾌합니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흰 발톱으로 나타내어 그것에 찢기는 <산호보다 붉고 푸른 생채기>를 통해서 세계의 아픔도 보여줍니다. 좀 더 시야를 넓혀보면 바다는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땅(지구)을 어루만지다가 <휘동그란히> 받쳐듭니다. 그러면 지구는 마치 연잎처럼 오므라들고 펴고를 반복하고..... 땅을 에워싼 바다의 더할 나위 없이 정겨운 모습이 아닌지요?
이 진 흥 - 매일신문, 2005/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