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5 - 하이네의 [고백] 일부

by 이진흥 posted Aug 0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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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까까머리 시절, 여학생 앞에서는 말도 못하고 딴청을 피웠던 그 때가 우리 인생의 가장 빛나던 황금의 시절이 아니었던가요? 특히 관심이 있던 여학생에게는 일부러 외면을 하던.....  그 때 들었던 시인의 이름들, 예컨대 푸쉬킨, 워즈워드, 바이론, 롱펠로, 발레리, 릴케.... 그 때의 이름 중 하나가 이 하이네라는 사람이었지요. 이 시인의 사랑의 [고백]이란 작품이 얼마나 근사하게 보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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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내 가슴은 더욱 뛴다.
나 이제 이 억센 손으로 노르웨이 숲에서
가장 큰 전나무를 뿌리째 뽑아
애트나 화산의 분화구에 담갔다가,
그 불붙은 거대한 붓으로
캄캄한 하늘에다 쓰리라:
"아그네스,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고

H. 하이네(1797~1856) '고백'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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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고백을 해 보셨는지요? 그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투신하는 참으로 가슴 두근거리는 경험이지요. 시인은 지금 어두워지는 바닷가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갈대를 꺾어서 모래 위에다 사랑한다고 써 봅니다. 곧 파도가 와서 지워버립니다. 그래서 지워지지 않을 고백을 생각해 냅니다. 노르웨이의 가장 큰 전나무를 뿌리째 뽑아다가 애트나 화산의 시뻘건 분화구에 담가서, 그 불붙은 거대한 붓으로 밤하늘에다 쓰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매일밤 하늘에서 불의 글자가 활활 타오를 것이고, 훗날 자손들까지 환성을 지르며 하늘에 쓰여진 그 말을 읽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사랑의 고백은 이쯤 돼야 하지 않을까요?

이진흥(시인) - 매일신문, 2005년 07월 1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