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낀 바위

by 송정섭 posted Jul 1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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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비가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용문사 숲길을 오른다.골짜기를 타고 이리저리 바위에 부딪쳐 하얀 물거품을 물속 깊이 뿌려대며 골짜기를 진동시키는 물소리가가슴에 시원하게 부딪쳐 온다. 빠르게 소리치며 여울되어 내 달리는 물살 위로늘어진 나뭇가지 위의 진한 녹색 잎은 윤기가 흐르며 힘차고 활력있어 보이는 것이젊은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진한 녹색 잎으로 온몸을 가리고 있는 나무들, 검게 타버린 바위를 파랗게 감싸 안고 있는 이끼, 그 사이사이로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물과 산 봉오리 꼭대기에서 부터 몇 개의 가지만 빼꼼이 내놓고 뽀얗게 내려 깔리는 안개가 한데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에 빗발까지 그려 넣어 신비감이 풍기는 멋진 산수화다. 문득 이끼 낀 큰바위에 시선이 멈추며 비디오가 머릿속에서 돌고 있다. 아득히 먼 소년시절 집에서 멀지 않은 동산 너머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비좁기는 하지만 내가 들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가진 꺼멓게 타고 이끼들이 붙어서 자라고 있는 이 바위는 나만의 본부였다. 마음이 울적하고 걱정 거리가 쌓여 심란할 적마다 이 바위를 찾은 기억이 있다. 큰 나무들로 둘러 쌓여 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이 바위는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이끼가 잔뜩 붙어 자라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낙옆이 구르는 소리가 요란해도 바위는 꿈적 않고 묵묵히 서서 그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있었다. 그 바위 안에 앉으면 아늑하고 조용한 것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던 기억이 지금도 마음속에 따뜻하게 남아있다. 어느 책 에선가 보니 바위가 쩍 쪼개져 햇볕과 바람,비, 눈 등을 맞으며 풍화되어 이끼가 끼어 자라려면 300년은 지나야 한다고 하니이 바위는 햇볕에 끄을리고 온갖 풍상에 시달리면서 수백 수천 년을 이 자리에서 묵묵히 견디고 지키며 나 같이 여린 가슴을 안고 속으로 앓고있는 축 쳐진 가녀린 어깨를 다독거리며 말없이 안아주어 그 속에 있는 작은 불씨를 꺼지지 않게 지켜주는 바람막이 역할을 했던 것이다 삶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바람막이 역할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구나 하는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제 삶의 연륜이 쌓이고 나의 자식이 성혼하여 한 가정을 이룬 것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내가 자식에게 그리고 마음을 나누던 친지에게 이끼 낀 바위가 되어 순간적으로 삶에 피로를 느껴 찾아 올 때 그의 삶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고 공감하며 말 없이 꼭 안아주는 듬직하고 믿음이 가는 바위가 되어 이 자리를 지켜야 할 텐데 하는 바람이 생긴다.
 
거센 물살이 아랫도리를 감아도는 저 바위에 머지 않아 빨간 단풍잎이넘어져 다친 어린아이 무릎의 상처처럼 발그레하게 달아오르고, 숲나무 사이로 휑하니 바람이 지나고 , 하얀 눈이 골짜기르 덮어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감추겠지 그렇게 흐르는 세월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누구인가 말했지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이 단순히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완성되어 가는 증거라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우겨도 근육의 탄력이 전 같지 못하고 가슴에 부는 스산한 바람은 막을 수 없는데, 내가 그동안 만들어 놓은 내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얼마나 지속 될지는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만들어 나갈 나를 그리고 내 주위를 살펴보아야 할것 같은 느김이다.

나 자신을 알기 위하여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참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하여 내 영혼의 내면으로 가는 힘든 길을 장님 문고리 만지듯 오늘도 더듬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