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ttle로 이사갑니다.

by 이호설 posted Jun 1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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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맘때가 되면 중학교 일학년때 벗나무에  검붉게 익은 뻣찌를 선농단 주변 청량대에서  따곤 했던 일을  생각하곤 한다. 후문에 가깝게 있는 종암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 봄 부중에 입학하고는 좁은 국민학교 운동장만이 전세계 이었던 내겐, 정말로 드넓은 운동장, 그리고 나무 우거진(?)청량대는  훌륭한  공간이었다.  운동장 서편에는 전쟁의 흔적인 잿빛의 콘세트 건물 두채가 있었고, 정문으로 등교 할 때 느티나무 그늘, 그리고 분수가 있던 회양목 어우러진 정원은, 특차 시험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합격 한 나에게는,  그냥 좋았다. 마악 신록이 시작 되는 때 미술시간의 청량대 사생. 그리고 이어진 과학 수업시간에 들은 꽃술, 쌍떡잎식물등등을  찾을 수 있었던 곳이 청량대 이었고, 이 시작이  대학까지 이어졌다.  왜 내가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고 화학을 전공하였을까 하는 의문도   청량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가끔씩은 생각이 든다. 떫고, 신맛이 도는 뻣찌를 입에 넣으며 물론 생물학을 생각 할 만큼 지적 성숙은 없었지만 생물은 외우는 것이 많고 뻣찌 맛이다 라고 그땐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에  미국에서 들여온 큼직한 체리를 먹다 왜 이런 뻣찌를 중학교 때 안 먹어보고 이제 책 덮을 나이에 이르러  맛을 알게 되는지 속으로 투덜대기도 했다. 만약 몰래 따먹던 뻣찌의 맛이 정말로 끝내 주었다면   생물학 박사가 되었을 수도 있고  시쳇말로 요즈음 잘 뜰 나이로  몇 해는 더 그래도 술값 걱정 안하고 포도주를 계속 마셨을 터이다.

 
지난해 년 말로 12년간의 금호화학 연구소장 직에서 퇴임하고 금년 6월말로는 상근고문도 끝나 6월 18일 대덕 연구단지를 떠나 미국 시아틀( Seattle )로 이사를 간다. 지난 봄 아들 결혼 때 베풀어 준 동문들의 후의에 인사도 모두 끝 마치지 못하고 떠나는 듯 하여 아쉽지만 다시 기회가 있으리라 믿는다. 시아틀에 방문하는 동문들은 항상 들려 주길 바란다. 년 말에 새 주소록이 나오기 전까지는 내 새 주소를 동창회 사무실로 E-mail로 보낸다. 
이호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