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보살이 쓴 소설을 읽고

by 노준용 posted May 0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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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뜬자는 빛을 보리라를 완독했다.
이제 눈이 아프다. 시간적으로 그리 되었다.
 
고백하거니와 내가 소설 한 권을 완독한 것이 15년은 넘었나 보다.
저자가 만들어 책으로 내고 내 이름과 혜존이란 단어를 친필로 써서
부쳐주기까지 한 성의가 매우 고맙지만 그 때문에  완독한 건 아니다.
이향숙이 썻기 때문에 읽었다. 
그리고 내용도, 내가 읽은 환경도
졸립지 않게 읽을 수 있던 상황이라 삼박자가 맞아 떨어졌다.
 
다른 사람들보다 좀 늦게 깨우치거나 늦게서야 무엇을 이루거나
늦게서야 무엇인가 중요하고 뜻있는 일을 하는 위치에 서게 되거나
할 때 우리는 늦깍기라는 말을 붙여 말한다. 
그럼 그 상대되는 말로 일찍 열매맺거나 웃자랐다고 하는 의미로
 더 일찍 깨우치거나 이루는 사람을 보고 웃깍기라고 하거나 올깍기라고 하면
알아 들을 만도 한데  그런 표현이 이상하게도 우리말 사전에 없다.
원래 늦깍기라는 말의 뿌리가
늦게 중이 되는 것에서 나온 말이라 그런지..
이 나이에 대단한 늦깍기. 이향숙이 세상에 내 놓은 첫 소설의 무대가
절과 중이라 난 책 읽고 향숙이 머리깍고 출가하는 걸 연상하고
그리고 늦깍기라는 단어를 크게 떠 올렸다. 
 
이 소설은 불교소설이면서 스님의 말과 행동을 통해 다른 종교를 아우르고
인간의 측면에서 불교 얘길 한다.   불교 용어가 많이 나오는데 그 중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가 공양이다. 작자는 이 말을 100번도 넘어 썻다.  그리고 다른 용어에
대해선 설명도 있었지만 이 단어는 그 뜻을 굳이 풀어 설명하지 않았는데
난 자연스레 그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이 말의 뜻을 깨우쳤다. 고기공양도
잘 아는 작자가 의도했는지와 관계없이 역시 인간생활에서 이게 제일 중요하니까.

격이 높은 소설이다.   절의 세계는 작자가 잘 안다 해도 군대, 중소기업, 남녀관계,
여러 요소가 등장하자니 아는 것도 많아야 하는데 원숙한 경험을 가지고
또 전문성이 있으니까  불교소설같이 어려운 소설도 쓰지.  다음 책 쓰게 되면
다시 밤 새우고 완독할 수 있다.
 
 
* 밤 새고 읽고 내친 김에 공양도 없이 운동하러 나가기 전 5월의 첫날
   아침 6시 45분에 이 글을 올린다.  오늘 운동은 앞이 보일 것 같다.
   이 농담 은  알아들을 사람 알아 듣는 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