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월이면 축령산으로 시산제를 지내러 간다.
이번이 아마 여섯번째인 것으로 기억되니 2월에 시산제를 지낸다는것에 익숙해질만도한데도 1월에 시산제를 지내지않고 왜 2월인가 하는 생각이 갈때마다 난다.
산신령께서는 양력이 없을때부터 계셨을터이니 당연히 입춘을 기점으로 정월로 삼은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야 당연한것 아니냐 ? 그리고 우리야 태어날때부터 음력에 익숙해져 있으니 하나도 이상할것이 없는게 아니냐 하는데에 공감이 가면서 , 또 추운 1월보다는 좀 더 따듯한 2월이 시산제 지내기에 편한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나면서도 웬지 쓸데없는것까지 생각키워지는건 나이먹는 징조인가?
하여튼, 오늘도 수서역 공영주차장에 일찍이다 싶을정도로 나갔는데에도 이미 꺽정이회장은 예의 뱃트맨 썬글라스에 한껏 멋을 부리고 장용웅,위광우,민일홍,우무일,방유정,이향숙,김용호,이명원,박효범,정태영과 함께 공장에서 얼마전에 출고됐다는 따끈따끈한 새 뻐스앞에서 오고있는 친구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곧이어 김상건이와 송인식,이성희,김진국,김수관,김영길이 나타나고 이석영이가 커다란 과일바구니를 들고 나타난다. 오래간만에 권영직이가 아들이 모는 자동차를 타고 폼잡으며 나오고 9시 땡하면서 정만호,유정숙,정숙자,진영애가 모습을 나타낸다. 10분이 조금더 지나 조병희,이상훈과 함께 역시 오래간만에 이제는 어느정도 틀이잡혀가는 수염을 달고 박영준이 나타나고 정확히 9시18분 아슬아슬하게 이영식이가 타면서 여자동문7명, 남자동문 21명을 태운 뻐스가 떠났다.
시내를 벗어나니 차창밖으로 보이는 산야가 지난 1월과는 비교가 될수없을 만큼 사뭇 다르다.
입춘이 저멀리 지나고 우수도 엊그제 지났다지만 아직은 정월 보름전인데도 불구하고 보이는 풍경이 완연하게 봄을 느끼게한다. 저쪽너머 밭가랭이옆의 나무며 그너머의 산자락에서부터 봄소리가 들려오는듯하고 봄냄새마져 풋풋하게 느껴지는 듯 하다. 김상건이가 시골에서 갖어왔다고 나누어 주는 곳감을 씹어본다. 부드러운 촉감이 혀를 간지럽히며 거기에 꺽정이가 준비해온 시루떡도 함께 먹으니 옛날 고사떡 나누어먹던 어린시절이 생각나 잠깐 동심으로 돌아간다.
새 뻐스라 힘이좋은가보다. 축령산 매표소까지 지나서 윘쪽의 주차장까지 올라간다.
11시가 다되어 산행시작. 올라가는 길은 아직은 얼음판. 모두들 아이젠은 준비해와서 그리 힘들지않게 산등성이에. 김윤종이가 귀동이와 함께와서 우리를 맞이한다. 귀동이까지 합하면 꼭 30명이다.
원래 이산은 이성계가 고려말에 이산에 사냥을 나왔다가 한마리도 잡지못하자 몰이꾼들이 이산이 신령스러운 산이라하자 산신제를 지내고 이때부터 고사를 올린산이라고 하여 축령산으로 부르기시작했다는 전설이 있다
조금더 올라가니 독수리모양의 수리바위. 수리바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석읍내가 저멀리 가물거린다. 더멀리 천마산 스키장 슬로프에는 아직도 휜눈이 길게 띠를 두르고 있네.
잠깐 조금 더오르니 남이바위. 왜 이곳에 남이이름을 붙였을까? 약관 스물여덟에 국방부장관을 지내고"백두산 어쩌구, 두만강 저쩌구"하면서 "남자 20대에 평천하 못하면 어찌 대장부라 하겠느냐" 하면서 어찌보면 호기를 ,어찌보면 시건방을 떨었던 남이이다. 그 바위위에서 1500원짜리 사과를 깎는다. 껍질을 너무 두껍게 갂는다며 500원어치는 다 깎였겠다고 방유정이와 이성희가 걱정을 한다. 이런 절약정신이 우리 60년대의 가난을 극복한 원동력이었겠지 생각하면서 50넘어서 평천하커녕 평무엇도 못한 자신을 돌아보며 혼자 속으로 실소한다.
능선옆 남쪽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계곡이 제법 깊다. 여기서 양 팔을 벌리고 뛰어내리면? 그냥 깻묵되는것바께 무엇이 되겠는가. 별 쓸데도 없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더 오르니 태극기가 펄럭이는 879미터의 정상.
1시가 되니 꼭 2시간을 쉬엄쉬엄 걸어오른 폭이다. 각자 준비해 온 과일이며 음식을 내어놓는다.
위광우는 무말랭이 무침을 술안주로, 이성희는 밤새 준비했을 듯한 똥그랑땡이며 전을, 방유정이는 오렌지며 귤과 사과를, 저쪽에선 정숙자가 배를 열심히 깎고있고. 김진국이는 뻐스에서 나누어준 시루떡을 맛있게 먹고 있고 , 송인식이는 방유정이가 떨어트린 보온병뚜껑을 줏으러 아슬아슬 곡예를 부리고 등등... 이제 하산해야겠다 하는데 니남의 정숙동무가 보디가드를 대동하고 나타난다. 이제 내사전에 더이상의 B조라는 것은 없다라는것을 뽐내며 보여주듯이.
하산길은 북쪽이라 얼음바닥이다. 조심조심. 아이젠은 물론 굽높은 신발에 장갑도 끼지않은 아줌마도 엉금엉금. 매정하게 내려가는 김수관이보고 여자동창 눈치보지말고 좀 도와주라고 했더니, 이아줌마,
우리여자동문들 힐끗 돌아보며 "할머니들 죄송해요" 한다. 저런 저런, 쯧쯧쯧. 나이볼줄도 모르는 색맹 아줌마이군. 나이도 볼줄 모르냐고 핀잔을 주니 그제서야 "언니들 ,미안해요" 한다 옆구리박아 각성하니 그래도 .....
산자락에 높게자란 잣나무숲을 지난다. 해방전에 손가락크기의 잣나무 묘목들을 심은것들이라느게 이렇게 커다랗게 자라 그윽하게 송진향을 내뿜는다.
2시반에 산아래에 도착하니 양지바른 아담한곳에 정성스럽게 제사상이 차려있다.
진영애가 북어및 황태를, 이석영이가 사과며 배, 대추, 그리고 해바라기씨까지 준비해와서
돼지머리와 시루떡이 함께있는 제사상이 그럴듯하다.
우무일이 축문을 운율 맞추어 가며 한참 읽는다. 모두들 술한잔씩 바치고 돼지입에 배춧잎도 한두장씩 물리며, 두사람은 각각 수표한장씩 물리며 한해의 건강과 소망을 빌었다.
(일부 교회에서 십일조 내역까지 공개하면서 신도들의 헌금을 은근히 압박한다는 소문이 있어 이를 반면교사삼아 우리는 자세한 내역은 밝히지않지만, 저녁때 산엔 참가못했지만 신해순, 최현근, 김광현까지 절값을 내어 오늘의 모든비용을 충당하고도 50만원이 넘는 돈이 오늘 쌓였음을 알린다.)
3시에 식당으로 내려와 늦은 점심.
백숙과 닭찜이 대기하고 있다. 산소주를 곁들여 점심을 먹고나니 4시40분경.
아직도 서편에 해가 높이 걸려있고 동쪽 축령산위로는 약간 찌그러진 보름달이 희미하게 걸려있다.
돌아오는 뻐스안에선 각자 끼리끼리 담소.
위광우가 그동안 참었던 노래를 한곡조 뽑으니 기다렸다는듯 기사아저씨가 운전하면서 화답을 한다.
예삿 노래솜씨가 아니다. 돈좀 들인 노래실력? 앵콜이 쏟아지니 더욱 신이난 이 아저씨,외나무다리를 그야말로 프로 뺨치게 부른다. 우리도 노래하면 카수가 있지. 암, 있고말고.
여자가수대표로 진영애가 심수봉의 "미워요"를 심수봉보다 더 잘불러 제끼고
자칭 화류계도사라하는 이상훈이가 "충청도"를, 이영식이가 "꽃든 남자"를 불러대니
의기양양하던 기사아저씨의 얼굴에 "예술학교 동창모임인가?"하는 기색이 엿보인다.
이래저래 밀리지않고 수서역에 도착하니 6시. 즐거운 시산제행사였습니다.
이번이 아마 여섯번째인 것으로 기억되니 2월에 시산제를 지낸다는것에 익숙해질만도한데도 1월에 시산제를 지내지않고 왜 2월인가 하는 생각이 갈때마다 난다.
산신령께서는 양력이 없을때부터 계셨을터이니 당연히 입춘을 기점으로 정월로 삼은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야 당연한것 아니냐 ? 그리고 우리야 태어날때부터 음력에 익숙해져 있으니 하나도 이상할것이 없는게 아니냐 하는데에 공감이 가면서 , 또 추운 1월보다는 좀 더 따듯한 2월이 시산제 지내기에 편한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나면서도 웬지 쓸데없는것까지 생각키워지는건 나이먹는 징조인가?
하여튼, 오늘도 수서역 공영주차장에 일찍이다 싶을정도로 나갔는데에도 이미 꺽정이회장은 예의 뱃트맨 썬글라스에 한껏 멋을 부리고 장용웅,위광우,민일홍,우무일,방유정,이향숙,김용호,이명원,박효범,정태영과 함께 공장에서 얼마전에 출고됐다는 따끈따끈한 새 뻐스앞에서 오고있는 친구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곧이어 김상건이와 송인식,이성희,김진국,김수관,김영길이 나타나고 이석영이가 커다란 과일바구니를 들고 나타난다. 오래간만에 권영직이가 아들이 모는 자동차를 타고 폼잡으며 나오고 9시 땡하면서 정만호,유정숙,정숙자,진영애가 모습을 나타낸다. 10분이 조금더 지나 조병희,이상훈과 함께 역시 오래간만에 이제는 어느정도 틀이잡혀가는 수염을 달고 박영준이 나타나고 정확히 9시18분 아슬아슬하게 이영식이가 타면서 여자동문7명, 남자동문 21명을 태운 뻐스가 떠났다.
시내를 벗어나니 차창밖으로 보이는 산야가 지난 1월과는 비교가 될수없을 만큼 사뭇 다르다.
입춘이 저멀리 지나고 우수도 엊그제 지났다지만 아직은 정월 보름전인데도 불구하고 보이는 풍경이 완연하게 봄을 느끼게한다. 저쪽너머 밭가랭이옆의 나무며 그너머의 산자락에서부터 봄소리가 들려오는듯하고 봄냄새마져 풋풋하게 느껴지는 듯 하다. 김상건이가 시골에서 갖어왔다고 나누어 주는 곳감을 씹어본다. 부드러운 촉감이 혀를 간지럽히며 거기에 꺽정이가 준비해온 시루떡도 함께 먹으니 옛날 고사떡 나누어먹던 어린시절이 생각나 잠깐 동심으로 돌아간다.
새 뻐스라 힘이좋은가보다. 축령산 매표소까지 지나서 윘쪽의 주차장까지 올라간다.
11시가 다되어 산행시작. 올라가는 길은 아직은 얼음판. 모두들 아이젠은 준비해와서 그리 힘들지않게 산등성이에. 김윤종이가 귀동이와 함께와서 우리를 맞이한다. 귀동이까지 합하면 꼭 30명이다.
원래 이산은 이성계가 고려말에 이산에 사냥을 나왔다가 한마리도 잡지못하자 몰이꾼들이 이산이 신령스러운 산이라하자 산신제를 지내고 이때부터 고사를 올린산이라고 하여 축령산으로 부르기시작했다는 전설이 있다
조금더 올라가니 독수리모양의 수리바위. 수리바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석읍내가 저멀리 가물거린다. 더멀리 천마산 스키장 슬로프에는 아직도 휜눈이 길게 띠를 두르고 있네.
잠깐 조금 더오르니 남이바위. 왜 이곳에 남이이름을 붙였을까? 약관 스물여덟에 국방부장관을 지내고"백두산 어쩌구, 두만강 저쩌구"하면서 "남자 20대에 평천하 못하면 어찌 대장부라 하겠느냐" 하면서 어찌보면 호기를 ,어찌보면 시건방을 떨었던 남이이다. 그 바위위에서 1500원짜리 사과를 깎는다. 껍질을 너무 두껍게 갂는다며 500원어치는 다 깎였겠다고 방유정이와 이성희가 걱정을 한다. 이런 절약정신이 우리 60년대의 가난을 극복한 원동력이었겠지 생각하면서 50넘어서 평천하커녕 평무엇도 못한 자신을 돌아보며 혼자 속으로 실소한다.
능선옆 남쪽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계곡이 제법 깊다. 여기서 양 팔을 벌리고 뛰어내리면? 그냥 깻묵되는것바께 무엇이 되겠는가. 별 쓸데도 없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더 오르니 태극기가 펄럭이는 879미터의 정상.
1시가 되니 꼭 2시간을 쉬엄쉬엄 걸어오른 폭이다. 각자 준비해 온 과일이며 음식을 내어놓는다.
위광우는 무말랭이 무침을 술안주로, 이성희는 밤새 준비했을 듯한 똥그랑땡이며 전을, 방유정이는 오렌지며 귤과 사과를, 저쪽에선 정숙자가 배를 열심히 깎고있고. 김진국이는 뻐스에서 나누어준 시루떡을 맛있게 먹고 있고 , 송인식이는 방유정이가 떨어트린 보온병뚜껑을 줏으러 아슬아슬 곡예를 부리고 등등... 이제 하산해야겠다 하는데 니남의 정숙동무가 보디가드를 대동하고 나타난다. 이제 내사전에 더이상의 B조라는 것은 없다라는것을 뽐내며 보여주듯이.
하산길은 북쪽이라 얼음바닥이다. 조심조심. 아이젠은 물론 굽높은 신발에 장갑도 끼지않은 아줌마도 엉금엉금. 매정하게 내려가는 김수관이보고 여자동창 눈치보지말고 좀 도와주라고 했더니, 이아줌마,
우리여자동문들 힐끗 돌아보며 "할머니들 죄송해요" 한다. 저런 저런, 쯧쯧쯧. 나이볼줄도 모르는 색맹 아줌마이군. 나이도 볼줄 모르냐고 핀잔을 주니 그제서야 "언니들 ,미안해요" 한다 옆구리박아 각성하니 그래도 .....
산자락에 높게자란 잣나무숲을 지난다. 해방전에 손가락크기의 잣나무 묘목들을 심은것들이라느게 이렇게 커다랗게 자라 그윽하게 송진향을 내뿜는다.
2시반에 산아래에 도착하니 양지바른 아담한곳에 정성스럽게 제사상이 차려있다.
진영애가 북어및 황태를, 이석영이가 사과며 배, 대추, 그리고 해바라기씨까지 준비해와서
돼지머리와 시루떡이 함께있는 제사상이 그럴듯하다.
우무일이 축문을 운율 맞추어 가며 한참 읽는다. 모두들 술한잔씩 바치고 돼지입에 배춧잎도 한두장씩 물리며, 두사람은 각각 수표한장씩 물리며 한해의 건강과 소망을 빌었다.
(일부 교회에서 십일조 내역까지 공개하면서 신도들의 헌금을 은근히 압박한다는 소문이 있어 이를 반면교사삼아 우리는 자세한 내역은 밝히지않지만, 저녁때 산엔 참가못했지만 신해순, 최현근, 김광현까지 절값을 내어 오늘의 모든비용을 충당하고도 50만원이 넘는 돈이 오늘 쌓였음을 알린다.)
3시에 식당으로 내려와 늦은 점심.
백숙과 닭찜이 대기하고 있다. 산소주를 곁들여 점심을 먹고나니 4시40분경.
아직도 서편에 해가 높이 걸려있고 동쪽 축령산위로는 약간 찌그러진 보름달이 희미하게 걸려있다.
돌아오는 뻐스안에선 각자 끼리끼리 담소.
위광우가 그동안 참었던 노래를 한곡조 뽑으니 기다렸다는듯 기사아저씨가 운전하면서 화답을 한다.
예삿 노래솜씨가 아니다. 돈좀 들인 노래실력? 앵콜이 쏟아지니 더욱 신이난 이 아저씨,외나무다리를 그야말로 프로 뺨치게 부른다. 우리도 노래하면 카수가 있지. 암, 있고말고.
여자가수대표로 진영애가 심수봉의 "미워요"를 심수봉보다 더 잘불러 제끼고
자칭 화류계도사라하는 이상훈이가 "충청도"를, 이영식이가 "꽃든 남자"를 불러대니
의기양양하던 기사아저씨의 얼굴에 "예술학교 동창모임인가?"하는 기색이 엿보인다.
이래저래 밀리지않고 수서역에 도착하니 6시. 즐거운 시산제행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