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고마운 일도 있단다.

by 정태영 posted Feb 1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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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 군에 간 아들이 훈련 나갔다가 조금 다쳤다는 전화가 있었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에 집에 온걸 보니, 발과 다리가 시퍼렇게 멍들고, 붓고 아주 엉망이다. 학사 장교로 군에 가서 현재 포병 중위로 근무하는 아들놈이,  6톤쯤 되는 대포를 트럭에 매달고 눈 덮인 언덕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차 앞에서 지휘하다 운전병 실수로 갑자기 달려드는 대포 밑에 깔렸는데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여 왼쪽 다리위로 대포가 지나갔단다.    



놀랍게도 뼈의 이상은 없고, 심한 타박상으로 출혈이 좀 있었는데, 젊음 덕에 회복이 꽤 빠른 것 같다. 부대에서는 용가리 통뼈라고 소문이 났다더라. 얘기를 들으니 그 때 그 주변 상황이 다행이 그 정도로 끝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던 것 같다. 자식 놈 얘기를 들으며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도 공포로 쌓여있고, 모든 이에, 모든 것에 감사하고 푼 마음일 뿐이다.



나 역시 군대 생활하면서 그 때의 몇 명의 동료들과 삶과 죽음의 갈림을 나눈 적이 있지만, 그런 순간들을 지나 돌이켜보면 우연한 몇 인치의 차이가 생과 사의 갈림 길이 되었던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자신도 알게 모르게 그러한 상황을 이렇게 저렇게 피해왔기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일 것이다.



이 나이까지 신체보존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냐? 그런데 우리 동기 중에도 이제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것이야 다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병이 들어서, 지나친 과로로, 또는 사고로, 그리고 30년쯤 후에는 노환으로....

 

겨울은 가고 희망의 새 봄이 오는데 누구나 다 아는 이런 어두운 얘기를 왜 또 하느냐며 심기 나빠지는 친구도 있겠지만 자유게시판에 며칠이 지나도 새로운 글이 없으니 욕을 먹어도 또 한번 쓰는 거다. 적어도 마스터인 상훈이는 좋아할 테니까.    



하여간 우리 모두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서 즐겁고 건강하게 살자. 등산할 때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하고, 술, 담배 너무 많이 해서 건강해치지 말고, 욕심 부리지 말고, 마음 편하게 올바른 길을 가면 그려면 “有朋이 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아” 이겠지. 다시 한번 범사에 감사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