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생각케하는 글

by 이향숙 posted Mar 0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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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시는 스토리문학관에서 '2001년 2월의 시'로 선정된 것인바 감동을 친구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퍼온 것임
 
 
아파하지 마세요
 
 
아버지 아버지
잘린 손가락은 어디 두고 오셨어요
둘둘 말린 작업복이 다 먹어치우지 못한 피가
똑 똑 병원 출입문을
졸음 겨운 접수대 아가씨 눈을
늦가을 오후 햇살을 두드리고 있었나요
뒤늦게 달려 온 김씨 아저씨 아니었다면
무수하게 자빠진 자재 더미 밑 틈새에서
간 밤 도둑고양이가 먹다 버린
생선토막처럼 썩어갔을 바른 손 검지 두어 마디

아버지 아버지
다 큰 자식들 앞에서 그렇게 울어 버리시면 어째요
누렇게 닳아 변색된 눈자위가
이 년 가슴을 낚아채 화장실로 끌고 가네요
아무리 오줌을 누어도 아무리 코를 풀어도
남은 수분이 눈구녕으로 한없이 솟구쳐요
맹장 수술을 했는지
허리를 움켜쥐고 깔깔대는 열 댓살 계집애의 고른 치아가
하얗게 튀어 오르네요
쉰 몇 조각으로 바수어진 손가락 뼛가루처럼 하얗게 하얗게

아버지 아버지
밤을 세워 그렇게 글씨연습만 하시면 어떡해요
글 써서 밥 벌어 먹고 사시는 분도 아니시면서
겨울이면 유난히 시리고 저리는 손 끝마디로
무어 그리 쓸 것이 많으세요
가끔 들여다 보는 아버지 일지는 받아쓰기 빵점이예요
자꾸만 잊어버리는 한자는 또 왜 그리 섞어 쓰세요
필체 좋다라는 사람들의 칭찬 한 마디, 졸업장 하나 없는 당신 삶에서
그 날 잘려 나가 끝내 봉합 되지 못한 것이
그것이었음을 모를까 봐요

아버지 아버지
눈 오는 생신에 또 우시기만 하면 어째요
막내가 드린 예순 네 송이 장미꽃만 보세요
한 겨울 새파랗게 꽂힌 보리처럼만 웃어 보세요
내일은 보란 듯이 백화점에서 사 온 등산화 신고 산에도 가셔야지요
자꾸만 우시는 통에 초가 벌써 반절이나 타 들어 갔네요
둘러 앉은 사남매도 좀 보시고
닷살박이 손주 손녀 어설픈 생일 축하 노래도 좀 들으시고
아버지 아버지 이제 그만,
아파하지 마세요
(empty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