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를 기다리며

by 이향숙 posted Mar 2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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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작가 수인이가 해외여행 등 사정으로 그간 불참한 탓에 매화당 게시판이 벌써 5주 동안 쉬었구나. 나라도 대타로 나서서 매화당이 살아있음을 써야겠지?

  여간 꽃샘바람이 마지막 심술을 부리는 오늘 키 큰 애들 둘, 영애 숙자와 키 작은 꼬마 나 셋만 산에 올랐다. 미자 영숙 인자 영경 모두 오늘은 몸이 불편하거나 바쁜가보다.

 숙자의 아주 예쁜 새빨간 새 점퍼가 기분까지 환하게 밝혀준다.

봄이라 그런가? 인파가 평소의 배는 되는 듯하다.

  가벼운 발걸음. 그러나 한가로이 천천히 걷는다. 매봉과 옥녀봉 갈림길을 지나니 아직도 길이 질퍽질퍽해서 조심조심 피해 걷는다. 다른 곳은 보송보송한데 여긴 웬일로 늦겨울 풍경이다.

  옥녀봉 정상에 서니 오히려 바람이 없고 화창한 전형적인 봄 날씨. 오늘 아침 갑자기 무릎이 아파서 등산을 그만둘까 잠시 생각했었는데 변심하길 잘했다.

  탁자에 앉아 대추차, 초컬릿, 한라봉, 피땅콩, 찰떡 등 갖가지 먹거리를 맛보고, 곧 잎새들이 피어날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앙상한 나무 가지들 사이로 멀리 보이는 능선과 그들 사이를 춤추며 다니는 예쁜 새들을 바라본다.

   이 나이에도 좋은 친구들과 좋은 곳에 앉아서 마음을 완전히 비운 무심한 경지에 도달한 이 시간 이 자리가 바로 극락이란 생각이 든다.

  내려올 때는 진달래 능선으로 평평한 길을 걸었다. 진달래는 아직 피지 않았지만 몇 그루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봉오리들이 꽤나 귀엽다. 늦어도 4월 두 번째 주엔 수인이 진달래꽃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만땅이다. 수인아.

   오는 길엔 안내판이 몇 군데 보인다.

  진달래와 철쭉의 차이점, 진달래의 꽃말과 전설, 등이다.

   진달래는 철쭉보다 먼저 피고, 색이 철쭉보다 더 선명하고 붉다. 진달래는 두견화라고도 부르며 먹을 수 있고, 철쭉은 먹을 수 없는 ‘개꽃‘이라고.....

아비 무덤을 지키던 소녀의 그리움이 짙어서 붉은 꽃이 되었다는 전설.

숙자도 하나 가르쳐준다. 개나리는 나리가 아니라 犬나리라고.

   조선면옥에서 영애가 이유 없이 “기냥” 밥을 샀다. 냉면 불고기 빈대떡까지... 기냥 포식하고 덕분에 오늘 저녁을 굶을 참이다.

  오늘은 참 많은 얘기를 나눴다.

  숙자는 학창 시절 내내 키가 커서 맨 뒷자리에만 앉아서 키 큰 걸 싫어했다는데 나는 초등학교 6년 동안 항상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아서 선생님 허리만 쳐다보았고, 보건 시간엔 줄 서서 “앞으로 나란히” 구령 때도 두 팔 드는 동작을 못해봤으니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얘기, 더 늙어서 마지막까지 산에 갈 수 있는 친구는 누가 될까? 처녀시절엔 암벽타기를 잘했는데 지금은 골프 스키 등산 라인댄스 당구 등 5가지 운동으로, 몸치인 나에겐  선망의 대상인 영애 얘기 등등...

그리고 또래의 다른 주변 사람들에 비해, 매화당 친구들과 동창모임에서 자주 만나는 동기 여학생들은 훨씬 건강하고 젊어 보인다는 데 이구동성으로 동의했다.